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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깃든 산 이야기 ㅣ 이판사판
아사다 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9월
평점 :
영화 '파이란'은 보지는 않았지만, 왜 제목은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그 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가 바로 아사다 지로라고 한다. 책 < 파이란 >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라면 왜 먼저 책부터 읽고 싶어지는 것일까.
영산 미타케산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스즈키 신관 가문. 신직을 승계할 아들만 남고 나머지 자식들은 모두 산을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종형제들이 부모의 고향인 산곡대기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어린아이들은 커다란 방에 모여 베게를 나란히 두고 누워 이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풍경을 읽으면서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명절이 되면 큰집에 모이게 되고, 사촌형제끼리 몰려 다니며 놀았고, 여름 휴가때도 함께 떠나서 쪼르륵 텐트를 쳐놓고 함께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짧은 단편들이 이어진 이야기인데, 유독 눈에 띄었던 이야기는 「산이 흔들리다」이다. 관동대지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 산 속에 있는 스즈키 저택에도 흔들림이 전해졌다. 지금처럼 연락이 자유롭지도 않은 시대에 외지로 나간 식구들의 신변도 확인할 수 없어 참 답답할 지경이었다. 지진이 발생하고 다음날 면사무소 호적계라는 젊은 관리와 오래전에 은퇴한 노순사가 신관을 찾았다. 미타케산을 비롯한 전 지역에도 계엄이 들어간다는 예보가 있을 것이라 알려주고 있다. 지진때문에 일시적인 군정이 실시되는줄 알았지만, 지진의 혼란을 틈타 불령선인이 폭동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불령선인'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한다. 모두 폭동을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 몸이 약해 신직을 물려받지 못했던 장남 이타루가 '불령선인의 폭동'은 흑색선전이라고 나선다. 소설속 인물이긴 하지만 이타루가 얼마나 고마운지. 혹시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관동대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그때 조선인에게 가해졌던 일들은 정말로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때도 이타루와 같은 일본인들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