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대 수명 시네마
노유정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직업 수명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영화관. 정말로 이런 영화관이 있다면 내 직업 수명도 알아보고 싶다.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손바닥을 뒤집듯 머릿속을 휘젓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 직업 기대수명을 알게 되는 것도 위험한 것 같다. 이 소설의 한 에피소드 중에 등장했던 한의사는 자신의 직업 기대 수명이 48년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전재산을 주식에 넣었다가 모두 날려먹어서 1년만에 한의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어떤 직업의 기대수명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갖추어져야만 완성될 수 있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11년차 무명 배우 지망생 송세린. 타고난 재능은 뛰어나지만 캐스팅에서는 항상 불발이다. 좌절감에 빠진 그녀 앞에 '기대 수명 시네마'가 나타났고, 세린의 직업 수명이 '0년'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세린은 기대 수명 시네마에서 재연 배우 생활이 시작된다. 세린의 업무는 자신의 직업 기대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을 대신해서 기대 수명이 사라진 이유를 찾아 작업의 서사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여러 에피소드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아무래도 장르소설 마니아이다 보니 '장미꽃 99송이'와 연결된 '사라진 변호사' 이다. 진아는 신욱과 사내 연애를 한다. 게다가 직장과 집이 너무 멀어 이사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신욱이 같이 사는 것을 제안한다. 물론, 신욱과의 사내 연애는 비밀이다. 함께 살면서 진아는 행복할까. 신욱의 의심과 감시가 날로 심해져 간다. 회사에서 남자 동료들과 눈이 마주치거나 귀가 시간이 늦는 것도 신욱은 트집을 잡게 된다. 과연 이것이 사랑일까. 급기야 신욱은 진아에게 폭력과 사과를 반복하더니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신욱의 변호를 맡은 유안은 도저히 변호할 의지가 솟아나질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때로는 의도치 않게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 유안도 마찬가지일테다.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하고자 했을테지만 범죄자의 변호를 맡을 땐 늘상 그들도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간혹 어떻게 저런 사람을 변호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들도 고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물론, 변호사도 그들 나름이겠지만)
참 흥미있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왜 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시네마가 세린의 눈에 보였는지와 시네마에서 일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매우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