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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다카노 가즈아키는 < 제노사이드 >로 만났었다. 당시 < 제노사이드 >를 읽을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의 데뷔작 < 13계단 >이 란포상을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극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 13계단 >과 < 제노사이드 >를 읽고, 다카노의 팬이 되었다. 물론 다카노의 이야기도 꽤 흥미진진하지만 < 제노사이드 >에 등장하는 한국인 유학생 '이정훈'의 실제 모델이 2001년 도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故이수현씨였다고 밝히며, 국적이 다르지만 이수현 씨처럼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 나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팬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11년만에 신작 < 건널목의 유령 >을 선보였다.
마쓰다는 2년전 아내와 사별했다. 상실감과 무기력함에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그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계약직으로 여성 월간지에서 일하고 있다. 어느날, 다친 동료를 대신에 심령 특집 기획을 맡게 되면서,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 허공에 아스라이 찍힌 심령사진에 주목하게 된다. 현재의 기술로도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사진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이 사실에 중점을 두기 위해 이 소설의 배경을 1994년으로 잡은 것 같다. 이 3호 건널목에서는 잦은 열차 정지사고가 있었고, 1년전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원도 파악되지 않은 그녀를 추적하는 사운데 새벽 1시 3분에 마쓰다에게 의문의 전화까지 걸려오게 된다.
심령사진이나 영매의 등장이 아무래도 이야기에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배경이 1994년인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문득, 예전에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다는 어느 형사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얼마나 이 의문스러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을까라는 생각에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마쓰다가 아내와 사별했다는 설정 또한 현실성을 끌어올리는데 한 몫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접하는 독자의 입장도...
세상에는 참 억울한 죽음이 많다. 게다가 신원도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서, 가족조차 모르는 그런 사연들도 많다. 왜 굳이 3호 건널목이었을까. 다카노의 소설 속에는 항상 인간애를 느낄수 있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녀가 3호 건널목까지 갔던 이유를 알게 된 순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제는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게 된다. 이것이 다카노 가즈아키의 힘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