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실성의 생활
정세진 지음 / 개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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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지우면 "님"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더라. 그것처럼 "성실"의 글자 순서만을 바꾸었더니 "실성"이 된다. 같은 글자인데 자리를 바꾸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정반대 말이 되어 버렸다. 말뜻은 반대가 아닐지 모르지만 이미지는 꽤 극과 극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성실'하거나 '실성'하거나 아닐까. 제목하나는 기가 막힌 에세이인것 같다. 음.. 그렇다고 제목만 좋다라고 보면 안될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가 이리 입담이 좋으리라고 그래서 정신없이 재미있게 읽을줄은 몰랐다는 사실은 밝히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싶다.

혼자만을 건사하고 살아갈때는 몰랐으나 가족이 생기고 새끼(작가 표현 그대로 옮겼다)가 생기면 정말로 성실과 실성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작가의 "새벽 2시에 약밥을 만드는 기분"이라는 글을 읽을 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얼마나 웃었던지. 회식에 참석했고 술도 제법 마시고 집에 들어간 날.. 식탁위에 놓였있는 아이의 유치원에서 홈메이드 간식을 보내달라는 가정통신문.... 만약 본인 일이었다면 미안~ 하면서 대충 얼버무렸을 일이지만 아이의 준비물이니 새벽에라도 냉장고를 뒤져가며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나... 나는 그 옛날 딸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아이비'를 가져가야 한다고 하더라... 직업 특성상 오후에 나가는 내게.. 참말로.. 수업끝나고 들어오면서 사오겠다고 길을 나섰다. 당시에는 12시까지 하는 마트도 있고, 충분히 가능할꺼라 생각하고 말이다. 잊지 않고 의기 양양 '아이비' 비스켓을 그것도 넉넉히 먹으라고 사갖고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 놓았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려던 아이가 물었다. "아이비 어딨어?" "김치냉장고 위에"...."아이비 어딨냐구???" "아니.. 거기 있잖아.. 왜 못찾어"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이게 뭐나면서... 내 어찌 '아이비'가 비스켓이 아닌 식물이라는 것을 알리가 있냐구. 나는 생전 아이비라는 식물을 본 적이 없단 말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학교에 보내고 동네 화원이 문 열자마자 '아이비'를 사갖구 가서 선생님께 잘 말씀드리겠다고 했던 적이 떠올라서 얼마나 웃었던지.

그야말로 책소개처럼 "직장인의 애환과 유구한 가부장제의 대환장 콜라보 속에서 매일 성실하게, 간간이 실성한 듯 웃고 우는 나날들"이란 말이 왜이리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지. 그것이 꼭 직장인인 여성에만 해당이 될까. 아직도 가부장적인 잔재가 존재하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성으로,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가는 일은 정말로 정신을 반쯤을 놓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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