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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평점 :
몇해전인가 이름도 귀여운 "곰돌이 채칼"을 사용했었다. 다양하게 썰리던 그 채칼을 처음 쓴건데... 왜 그 것으로 가래떡을 썰려고 했던지... 모르겠지만.. 뭐든 예쁘게 썰리고 그리고 이름도 너무나도 친근한 "곰돌이" 채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귀여운 곰들도 결국엔 맹수였듯이.. 곰돌이 채칼에 내 손이 베이고 말았었다. 그냥 손으로 잡고 있어도 지혈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동네 외과를 찾아가서 몇바늘 꿰엤었다. 마지막 한바늘은 마취가 미처 되지 않은 곳이어서 하마터면 의사선생님을 때릴뻔 했다는 일화를 남기면서... 손톱에서 살짝 떨어진 곳이라 흉터도 남지 않고, 남았더라도 남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는 그날의 사건때문에 우리집 그 귀엽고 귀여운 이름을 가진 '곰돌이 채칼'은 선반장 깊숙이 귀양을 보내고 엄마가 쓰시던 아주 오래된 채칼이 다시 복귀했다.
아직까지도 그 채칼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상 트라우마로 남아서 쓸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 경험도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진짜 트라우마"를 발현한다고 보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저 PTSD는 트라우마의 일부만을 보는 부분집합 같은 것이라고 한다. 외면만 보고는 절대로 구별할 수 없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도 꽤 매우 힘들어 하고 있을 이들을 조롱하는 듯 말해서도 안될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의구심이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사람을 죽인 공격과 사람을 살린 공격(p.208)"이라는 글을 읽을 때였다. 태국과 미얀마 사이의 국경을 따라 여행하더중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투숙객이 돈을 훔치려고 다른 한 투숙객을 절벽으로 밀어떨어뜨렸다고 한다. 지금 리뷰를 쓰고 있으면서 내가 이 책을 읽을 당시 느꼈던 이야기가 맞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살인자에 관해서는 더이상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마 그의 트라우마 이력은 구구절절 길 것이라고 예상한다'라는 말을 살인자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처음에는 해석했는데, 맞는지 아니면 내 문해력이 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느낌을 말하자면, 살인이라는 행위를 저지르고도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분명 싸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는 겪은 사건이 크고 작거나 그 규모와 심각성을 떠나서라도 누구에게나 생길수 있는 그런 것일수 있다고 본다.
저자도 동생이 희귀 질환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가족들에게 숨기고 자살을 선택했던 사건을 겪으면서, 동생과 같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기에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그런 저자의 마음 때문에 편안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트라우마를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