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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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 리뷰를 보고 한번 읽어보고자 했었다. 그때는 이렇게 벽돌책인지 몰랐다. 2016년 856쪽의 벽돌책 <다윈 영의 악의 기원>으로 한국 문단에 독보적 발자취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 고(故) 박지리 작가의 책을 3권으로 분권해 '욜로욜로' 시리즈로 새롭게 펴냈다. 작가는 이 책으로 2016년 '레드어워드 시선 부문'과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책소개) 벽돌책인 것은 출판사도 인정하는구나. 이 책을 다 읽고, 세상을 등진 박지리 작가가 이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더 이상 저자의 책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계급이 확실하게 나뉘어진 사회. 굳이 사는 곳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우리 세계와 별반 다를 것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폭이 넓혀졌지만, 1지구 출신들에게 진학이 유리한 프라임 스쿨의 모범생 다윈 영. 다윈의 아버지 니스 영은 문교부 차관으로 앞길이 창창한 고위직 공무원이다. 30년전 죽은 친구 제이 헌터의 추도식을 열어준다. 다윈은 옛 친구의 죽음에 아버지가 고수하는 엄격함이 좋았다. 죽음을 존중한다는 건 그만큼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삶을 존중한다는 건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의미였다.(p.30) 처음엔 이 문장을 무심코 읽었지만 다윈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 비로소 다윈의 방황이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다윈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 악을 표출시킬까, 아니면 잘 다스리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 해의 마지막 날 모든 인간들은 양말을 벗고 자기의 숨은 죄가 측정되는 특수한 저울에 올라가야 한다고. 그래서 만약에 저울에 3그램 이상이 뜨면, 그 사람은 새해를 맞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니 처벌 받아야 한다고.(p.663)

과연 이 말을 한 친구는 떳떳할까. 자신에게는 3그램의 죄도 없을까. 16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제이 헌터의 조카 루미 헌터는 자신이 닮았다는 삼촌의 죽음에 의문을 갖는다. 할아버지 해리 헌터가 선물했다는 앨범에서 사라진 사진 한장. 꼼꼼했다던 삼촌의 성격상 사진 한장이 비워진채 앨범을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터. 분명 그 사진은 살인자가 가지고 갔을 것이다. 살인범은 9지구에 사는 후디가 아니라 1지구에 사는 사람일 것이라며 30여년전의 진실을 밝히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부터 짚이는 점이 하나 있었다. 워낙에 헛다리를 잘 짚는 나였지만, 내 예상이 맞아 떨어지자 의기양양 해지다가 작가의 조심스런 질문을 만나버렸다. 순간 예전에 읽었던 < 침묵을 삼킨 소년 >에서 "마음이랑 몸이랑 어느 쪽을 죽인게 더 나쁘냐구?"라며 절규하던 소년의 모습이 생각났다. 살인이라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살인이 절박한 순간에 나온 것이리라는 생각. 아.. 작가는 30년전의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히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진화라는 것은 본디 오랜 시간 걸쳐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런 쉽사리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 가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꼭 이런 살인이 아니더라도 개개인마다 갑자기 사람을 변모시킬만한 충격적인 사건은 있을 것이다. 그런 사건에 직면했을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현명한 선택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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