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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ㅣ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평점 :
원래 블랙코미디라는 이름이 붙은 이야기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 블랙코미디라 함은 어두운 느낌을 주는 잔혹하고 통렬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는 희극이라고 하던데, 읽고나도 무엇을 풍자하는 건지, 무슨 내용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 다반사라 좋아하는 작가가 쓴데도 안 읽는 쪽을 택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떤 것을 풍자했는지는 잘은 몰라도 재밌게 읽긴했다.
미디어콘텐츠 학과의 [미디어 제작 실습], 마치 대학때 강의를 듣는듯한 느낌의 강의 계획서까지 첨부되어 있다. 조를 짜서 인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 수업이다. 채연은 조장을 맡아, 스스로 과제헌터라고 밝히며 인당 50만원을 입금하면 혼자서 다 하겠다. A를 받지 못하면 200배로 환불해 주겠다는 메세지를 보낸다. 그녀는 예전에 만든 6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이번이 막학기라 아마도 B학점이 나오면 그야말로 먹튀를 하려는 심산인가보다. 그런데, 난감해진다. 이번학기부터 수업 방식을 다르게 해서 조에서 원하는 인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른 조가 선정한 인물을 제비뽑기로 선정하여 제작하는 것이었다. 제비뽑기는 불공정하다 항변해 보지만, 교수는 "모두에게 불공정하기에 모두에게 공정하다네."(p.12)라며 일갈한다.
어느날 갑자기 축구선수가 된 김덕배. 그야말로 한국인이 아니면 모르는 한일 축구전. 다른 나라들에게는 져도 일본만은 안된다는 그 경기에서 김덕배는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넣고 월드 클래스급의 선수가 된다. 하지만 재능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근본이 없었던 김덕배는 1년도 안되서 은퇴를 하고 종적을 감추었는데, 바로 그 김덕배가 채연이 만들어야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채연은 김덕배라는 선수를 알지 못하자, 50만원의 돈을 입금하지 못하면 자그만치 200배인 1억을 물어내야 한다고 조원들은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채연은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까.
이 소설의 다른 묘미는 작가가 달아놓은 주석이다. 간혹 복선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기 일쑤인데, 하나하나 작가는 "복선입니다. 기억하세요"라는가, "진짜입니다. 검색해보세요"라는 말들을 달아놓음으로써 흥미를 고조시킨다. 본문 중간중간 "10쪽을 다시 보고 올 독자분들을 위한 텀"이라고 적어놓아 실제로 작가가 이야기를 해주고, 기다려주는 느낌을 줘서 참으로 유쾌하게 읽을수 있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