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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ㅣ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평점 :
"흑역사"라고 함은 현재는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혹은 없던 일로 된 과거의 일을 가리킨다고 국어사전에 등재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 나온 이야기들은 뭐.. 그런 의미로까지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진실을 탐구하는 또는 내 이론에 고집이 좀 센 그들의 기록들이라고 할까. 과학은 참 재미있다고 종종 느낀 적이 있다. 일때문에 오래전에 덮어놨던 열역학법칙을 꺼내어 봤다. 자연현상이 수식으로 정리된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던지 말이다. 어쩌면 인간의 호기심이 이렇게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오지 않았을까?
의심이란 과학자들에게 무척 훌륭한 자질이다. 그들은 의심을 통해 우매함, 잘못된 지식, 편견을 깨부순다. 그러나 의심 그 자체가 편견에 가려져 있다면, 이 강력한 무기는 수많은 천재를 목 졸라 죽일 수도 있다.(p.107)
이 말은 비단 과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다. 과거 과학을 대하는 태도들을 보면 어떠한 편견에 정말로 수많은 천재들이 더 많은 자연의 섭리를 밝힐수도 있었지만 어이없이 쓰러져 갔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과학은 종교와 대립되어 왔다. 솔직히 철저하게 둘은 분리되어 동등해져야 한다. 과거 종교는 과학을 지배하려고 했기에 과학의 발전이 더디지 않았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1장 말미에 나오는 스티븐 호킹에 대해 그는 신의 어깨에 올라타 우주의 비밀을 슬쩍 넘겨다보았던 행운아였을 뿐이다(p.34)라는 말에 그다지 동의할 수 없다.
흔히들 아이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돌턴과 게이뤼삭의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원자설을 주장했던 돌턴은 게이뤼삭의 기체 반응의 법칙에 관련된 가설이 부딪히는 상황이 온다. 자신의 이론을 호응할 줄 알았던 게이뤼삭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두 사람의 논쟁이 시작된 다음 해인 아보가드로가 게이뤼삭의 가설에 단어 하나를 바꾸고 나니 모든 모순점이 해소가 되더라. 수정이 필요한 돌턴의 원자설은 가설로 남았지만 게이뤼삭의 기체 반응의 법칙은 확고한 법칙으로 자리잡았다. 내 이해가 맞다면 어부지리격으로 아보가드로는 법칙을 손에 쥔게 아닌가 본다.
어쩌면 과학사의 과학자들의 논쟁은 그들이 저지른 황당한 실수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어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 언급된 과학자들은 꽤 천재적인 사람들이다. 지금은 당시 주장했던 내용들이 잘못된 내용으로 밝혀진다 해도 절대로 그들이 명석하지 못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흔히 잘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과정을 제시하면서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과학자의 흑역사는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일이 아니라 치열하게 토론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