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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면 ㅣ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평점 :
음... 가끔은 난감한 이야기가 있다. 내게는 단편이 그렇다. 이 소설은 단편은 아니지만 제목처럼 마치 한씬 한씬 장면이 펼쳐지고 있어서 인과관계를 따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아마도 내 성향때문인지, 나는 시나 단편에는 맥을 못 추는 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말로 지극히 나의 주관적 해석이다. 뭐..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으니 그렇게 쓰는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포착됨을 거부하는 문체와 평면적이고 반복적인 서사로 특유의 작품 세계를 이어온 작가 김엄지라고 하는데, 아마도 내게는 처음 만나는 작가라 익숙하지 않아, 이 소설의 서술되는 방식이 좀 낯설기도 하다.
'R'은 기억을 잃었다. 8개월 전 미끄러져 5미터 밑의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그는 기억을 못하는게 많다. 기억상실증이라기 보다는 드문드문 기억나지 않는게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와 별반 다를게 없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기는 한데, R과 비교해 본다면 그가 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아내와 떠난 제인해변에서도 아내를 잃었다. 그녀와 함께 떠나는 온 것인지, 애초에 혼자온 여행이었는지 자신도 사실을 잘 인지 못해서 보는 나도 조금은 혼란스러울까. 마지막을 덮으면서 혹시나 R이 아내를 해친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장르소설을 많이 읽은 탓일까. 어찌보면 R은 현대인의 모습인 것만 같다. 어디 제 정신으로 살아갈만한 세상은 아닌것 같다.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부정하고픈 세계인지 혼미한 그런 R들이 여기 저기 방황하고 있는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