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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
이지아 지음 / 스윙테일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제1회 카카오페이지 X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특별 선정작
처음엔 이 책의 표지를 보고... 하.....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니.. 너무나도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오래된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었나 보다. 아마도 영어덜트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어덜트인 내가 읽어도 무진장 재미난다.
25년 7일 14시간. 다비드 훈이 나를 떠난 시간..
지구인 우주 경찰 다비드 훈과 그의 정찰선 티스테. 토성으로 정찰을 왔을때, 때아닌 모래폭풍을 만나 잠시 머물러야만 했다. 인간이 늙듯 기계도 조금씩 무뎌지는 탓이었다. 훈의 딸인 피치를 낳을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 때문에 피치가 아기를 낳을땐 반드시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며, 훈은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지구로 떠났다. 티스테는 그렇게 모래에 파묻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을 즈음 어레스 박사가 그를 발견하곤 인간의 몸을 만들어 주고 감정 코드를 삽입해 주었다. 티스테가 눈을 뜨고 처음 한 일은 눈물을 펑펑 쏟아낸 것이었다.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버림을 받고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처절하게 울수는 없다고...(p.162)
인간의 감정을 모를때에도 꽤나 티스테는 훈을 믿고 따랐음에 분명하다. 25년 7일 14일, 훈이 떠나간 시간을 하나씩 세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를 버리지 말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그래서 처음 한 일이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것을 아닐까.
훈은 지구에 돌아와서 끊임없이 티스테를 찾기 위해 구조선을 보낼것을 요청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날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훈의 딸은 병원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피치의 딸인 롯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해커로서 일한다. 오늘날 가장 무서운 병이 폐병이 되었다. 아마도 미래 사회에서도 가장 문제되는 것은 환경인듯하다. 엄마를 청정지역에 가까운 에멀란드 존에 가까운 곳으로 모시는 것이 롯의 꿈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주로직사에서 오래된 제품인 정찰선은 회수해 반납해 주면 거금의 배상금을 주겠다라는 편지가 훈의 앞으로 배달되었다. 비록 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롯은 엄마를 위해서 정찰선을 찾기 위해 할아버지의 정찰일지를 찾아 토성으로 떠난다. 회사에 반납하고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너를 보고 싶어 하지만 지금 매우 위독한 상태라고 속이고 말이다.
정말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때론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훈도 티스테를 찾아오고 싶었을 테다. 그곳에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아픈 딸을 두고 떠날수는 없었다. 교신이라도 되었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이다. 어쩐지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티스테에게 더 연민의 정이 갔다. 그와는 다른 경우였지만 하염없이 기다린적이 있었다. 이유도 모른채... 비록 25년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를 이해할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니더라도 예전의 나였다면 그 방향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그는 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만나러 지구행을 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에이트 빌로우>라는 환자를 이송하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기며 썰매개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주인공(?) 제리는 떠난다. 악천후 때문에 돌아갈수 없었던 제리는 175일만에 돌아온다. 그간의 그의 노력을 모르는 그 썰매개들이 바로 티스테의 입장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재회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 그 영화가 떠올랐다. 상처받는 것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리고 기계든 똑같을 것이다. 어린아이일 적에는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다 그렇게 챙겨주다가 왜 어른들이 되면서 그 마음을 외면하게 될까. 생명이 없다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도 야박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쩜 나는 아직 영어덜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