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종으로 나누려고 할까? 한 입 크기 철학 2
마갈리 베손느 지음, 알프레드 그림, 손윤지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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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레이첼 돌레잘이 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녀는 흑인민권단체장이었는데 수년동안 흑인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실상 그녀는 백인이었다. 그야말로 인종전환(transracial)이다. 하지만 그녀는 흑인의 인권향상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당시 레이첼은 단체장직에서 사퇴했고, 2017년 기사에서 직장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할 위기라고 전했다. 지금 그녀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당시에도 그녀가 인종 정체성을 위조한 사기꾼이라고 비난 했고, 그녀가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을것이라 평가하거나, 혹은 그녀가 모든 사람들을 속이며 흑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선의의 활동을 해온것은 사실상 미국에서 흑인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얻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며 비난하는 부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볼때, 이게 왜 이런 논란을 일으켜야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 흑인행세를 하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미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흑인으로서 누릴수 있는 혜택이 있기는 있는건가? 만약 반대로 흑인이 백인 행세를 했다면..과연 같은 생각을 했을까 싶다.


'인종'이라는 말은 유럽의 탐험가와 여행가들이 항해 중에 다른 지역에서 만난 인구집단을 다양한 외양적 특징에 따라 '모사'하고 '분류'하기 위해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종'이라는 것은 경제적 착취, 정치적 배제, 사회적 특권 등의 문제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좀 아쉽다. 사람의 피부색으로 인해, 어느 지역에 살고있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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