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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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문제적 고전 살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 실제로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파헤친다. 기가 막히게 잘 포장해놓은 이야기들 속에 꼭꼭 숨겨진 신음소리, 한숨소리, 통곡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 헝클어진 소리들 속에서 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귀감(龜鑑)이 되고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것이다(p.7)라고 들어가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 글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흔히들 장르소설에는 별반 건질게 없다는 식으로 재미로만 읽는다고, 고전이나 인문학을 읽어야 진정 독서가라고 한다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기가 막히게 잘 포장해 놓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내게는 들린다.


특히나 '처첩의 세계'에서는 그 옛날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안타깝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마음 아프다. 요즘에도 상류층에서는 서로 결혼들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진입할 수 없는 성을 형성하고는 있지만 당시도 당연히 그랬으리라. 그래서 남녀간의 결혼이란 어른들이 정해주시는 그래서 얼굴 한번 안보고도 가능했다. 하지만 여자들보다 남자들에게 더 유리했던 점이 있었으니 바로 '처(妻)와 첩(妾)'이다. 남자들만 편하게 사는 그런 세상이다. 특히나, 홍길동전에 나오는 길동의 친모 춘섬은 길동의 아버지 홍판서가 맘에 들어서 첩으로 들인 것도 아니고 그저 순간적으로 일어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존재였다. 만약 춘섬이 아들을 낳지 못했다면 그냥 그렇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길동이 조선을 떠나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되고 처와 첩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산다. 홍길동에서 그를 괴롭혔던 것은 호부호형을 알수 없었던 적서차별의 문제였지 처첩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적서 차별이 문제였다면 처첩의 문제가 없었으면 그만일텐데, 길동이 마저 여전히 처첩을 거느리니, 남성들에게만 편하고 여성에는 잔인한 시대가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열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선초기에 양반집 과부들도 재혼이 가능했지만 차츰 그것을 금했다고 한다. 남편이 죽으면 더이상 자손들의 출산이 끝나고 동시에 관직에 진출할 양반의 배출이 종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재가한다면 다시 자식을 낳게 될 것이고 아들을 낳게 될 터이다. 첩의 자식은 적서차별로 관직 진출을 막으면 되지만 이는 자신들의 한정된 밥그릇 싸움때문에 여자들의 결혼과 출산을 제한한 음모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홀로 남은 그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열녀를 만들려고 한다. 왜 여성들에게만 절개를 지키라고 강요하는가. 그와 관련된 슬픈 단어가 "환향녀(還鄕女)"가 아닐까 싶다. 글자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임에도 병자호란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내치며 지금은 성적으로 문란한 마구잡이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며 '화냥년'리안 욕이 되어 버렸으니 참 기구한 여성의 삶이 애처로울 뿐이다.


지금도 세상을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 옛날의 여성들 삶 또한 녹록치는 않았다. 옛이야기에서 살펴보는 것들중에서도 다른 사회적인 문제는 비판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배려는 없는것만 같다. 가족이라는 말 속에 고스란이 위선과 증오가 솟아오르고 있는듯하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는 그런 소설류인줄 알았다. 하지만 옛이야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서러움의 목소리를 들을수가 있다. 결코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이야기들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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