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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벨기에의 공쿠르상이라 불리는 빅토르셀상을 비롯해 로망프낙상, 프르미에르플륌상, 필리그란출산사상 등 14개 문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염소들은 어떻게 엄마 배속으로 들어간 거야?"
"들어간 게 아니야. 아빠 염소랑 함께 아기를 만든거야. 서로 정말로 사랑했거든."
"아빠 염소는 하루도 안 있고 갔잖아. 서로 알 시간도 없었는데 어떻게 사랑해?"
"응, 그런 걸 바로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 거야."
- 본문 中, p.19 -
남매가 나누는 이야기를 보고 초반에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만 있다가 가는 아빠 염소가 첫눈에 반해 엄마 염소와 사랑에 빠졌다는...열살 소녀와 네살 남동생의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 이야기는 참 어둡다. 하지만 소녀는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괜한 트집을 잡으며 가족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고, 엄마는 마치 아무 생각이 없는 아메바 같았다. 어느날 동생 질은 아이스크림 파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기생충이 머리에 자리잡은 듯했다. 그런 끔찍한 과정을 네살 나이에 경험한 질은 따듯하게 감싸 안아줄 어른이 필요했지만 이 남매의 부모는 절대로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날 이후로 웃음을 잃어가는 동생의 웃음을 찾기 위해 소녀는 타임머신을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점점 더 질은 이상해져만 갔다.
가정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 편안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 아버지의 태도와 공포감에 정말 소녀가 일컫듯 아무 생각없이 단세포 처럼 움직이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개척하고 아름답게 성장하기에 화가 나지만 끝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만 같다. 세상은 변했지만 아직도 구닥다리 사고방식에 사로 잡혀 아이들을 소유물처럼, 그냥 자신의 명령에만 따라야 하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아이들의 자존감을 억누르는 그런 인간들은 부모라는 이름을 주면 안된다.
나는 열다섯 살에 삶이 선사한 그 모든 경이로움을 보았다. 공포를 보았고,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승리했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남들이 안전할 것이라는 곳에서 위험에 내몰리고, 아무도 손내밀어 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소녀가 너무나도 안쓰럽다. 열다섯 살 나이에는 공포를 보지 않아도 된다.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 시절의 뺨을 어루만지는 위태롭고도 아릿한 추억들은 이제 더이상 기억하지 않고 따듯한 여름날을 맞이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