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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아프로퓨처리즘의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의 SF의 걸작!!
그런데 정작 나는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라는 분야를 잘 몰랐다. 그래서 찾아보니 아프리가(Afro-)와 미래주의(futurism)의 합성어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문화, 역사와 선진 기술의 발전을 융합시킨 문화 양식이라고 한다. 또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SF계의 그랜드 데임(grande dame)으로 불린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프로퓨처리즘의 세계를 전혀 모를뻔했다.
이 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좀 낯선 분야여서, SF쪽을 몇편 읽었었는데 잘 이해하지 못해서 선뜻 읽지를 않아서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것인지 스토리에 동화될수가 없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어느순간 내가 이 책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역시 그랜드 데임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할 정도로 말이다. 작품 소개를 읽어보면 이 <와일드 시드>는 저자의 '도안가(Patternist) 시리즈' 중 출간 순서상으로는 다섯 권 중 네 번째, 소설 속 시간 순으로는 첫번째 책이라고 한다. 이 말을 먼저 읽어본 순간 '아, 이러면 이 시리즈를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 책을 덮는 순간 꼭 읽어보리라 결심했다. 그만큼 옥타비아 버틀러를 처음 만난 내게도 이 <와일드 시드>는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하겠다.
타인의 육체를 빼앗는 능력으로 수천년을 살아온 나쁜 남자 '도로', 변신과 치유 그리고 불사의 능력으로 수백년을 버텨온 여자 '아냥우'. 도로는 초능력자들을 찾아내 한마을에 모은 다음, 자신의 아이를 갖게 하거나 서로 교배시켜 새롭고 강한 일종의 초인 일족을 만들고 있다. 그에게 인간들은 어떤 존재일까. 그저 교배와 개량의 대상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만 같다. 그에게 아냥우는 매우 관심을 끄는 여성이다. 그녀는 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초인이지만 도로로부터 유래하지 않은 야생종(Wild Seed)이다. 도로는 그녀에게 '손으로 묻지 않아도 되는 자식을 주겠다'라고 제안하고 도로의 일족 마을 휘틀리로 간다. 그러나 아냥우의 생각과는 달리 도로는 그의 아들 아이작과 결혼하라고 명령한다.
습관은 깨기 힘들다. 삶이라는 습관, 두려움이라는 습관.... 심지어 사랑이라는 습관까지도. (p.385)
그저 새로운 능력을 가진 오래동안 살수 있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위해 도로는 마치 실험하듯 초능력자들을 교배시킨다. 한참을 읽다보면 무엇을 위하여 도로는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수 없어진다. 그는 마치 떠돌아다니는 유령처럼 본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람 저사람 육체를 옷입듯이 건너다닌다. 그래서 더 두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언제 그에게 점령당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아냥우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복종하고 또 복종했다. 자신의 일족을 꾸려 나가던 본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그저 습관처럼 복종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도로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생각치 못했던일, 그리고 아무도 실행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다.
음... 이 거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내가 뭐라 할수 있을까. 그야말로 홈빡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뿐이었다. 나에게 새로운 분야를 보여준 그녀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