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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김지우 지음 / 홍익 / 2019년 5월
평점 :
나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예전에 어린 딸아이가 '네 이름이 뭐야?'라는 질문에 곧잘 자기 이름을 말해서, "어떻게 알았어?"라고 하면 "엄마가 그렇게 부르잖아"라고 했다. 그렇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니까, 항상 그렇게 불뤼었던 이름이었으니까 그 이름에 반응을 했던것이겠지. 그렇게 딸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갈때 나는 내 이름을 잃어버린것 같다. 딸아이 이름으로 부른다던가, 'OO엄마'라는 호칭을 달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약에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내 본연의 이름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 석자 말고, 나는 또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소설가라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힌다. 그래서 열심히 쓰고 또 썼다고 한다. 나는 어떤 이름을 원했을까? 지금의 내 이름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이름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완성형이 되어버리지 못한 나의 이름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소설속 그녀들이 느꼈을 불안감과 초초함, 설렘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특히나 <완벽한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보면서 살짝 미소도 지었고, 뭐 굳이 모든 이름을 총망라할 필요가 있을까. 그 이름이 아니어도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유리는 정말로 타고난 요리학살자이다. 뭐든 레시피대로 해도 절대로 같은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편의 생일에는 정말로 완벽한 미역국을 끓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한 아내의 도리는 아닐테다. 미역국하나 못 끓인다고 아내가 아내가 아닐수도 없을테고 그리고 왜 굳이 미역국은 아내만이 끓여야 하는가. 서로 잘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청소를 잘하는 사람이 청소를 하면 될 것이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요리를 하면 되는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아끼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이갸기를 읽으면서 나도 어느새 위안을 받았다. 비록 내가 원했던 나의 이름의 완성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 위치에서 수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으니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쉬운점은 아마도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아쉬움일까. 너무 어렸었기에 쉽게 접어버린 꿈이 참 미련이 남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애썼던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