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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숙의 나라
안휘 지음 / 상상마당 / 2019년 2월
평점 :
"화냥년"이라는 말을 아는가? 소위 '서방질을 잘 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병자호란때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을 일컫는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나라가 힘이 없어 지켜주지 못했던 여인들이 모진 고생을 하면서 힘들게 돌아왔는데 왜 그녀들은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이혼당해야 하며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혹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비겁한 사대부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말에 나오듯이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천보산 끝자락에는 초라한 묘'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 의정부이다. 비록 우리집은 금오동은 아니지만말이다. 딸아이가 초등학생때 사회 시간에 우리동네 유적지를 조사하는 숙제를 할 당시에 의순공주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청나라에 항복한것도 상당한 치욕스럽게 생각한 사대부인데, 조선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테니 보내라는 것은 도무지 따를수가 없었다. 인조가 나서 삼전도의 굴욕도 간신히 참고 있는데 어찌 공주를 보내랴... 당시 효종의 따님이신 숙안공주가 있었으나 미혼의 공주가 없다 속이고, 왕가의 종친인 금림군 이개윤의 딸인 이애숙을 효종의 수양딸로 삼고 "의순"이라는 작호를 내리고 그녀를 청나라로 보냈다. 압록강을 건너기전 그녀는 물에 빠져 자결을 했다고 하고 족두리만 건져 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지만 족두리묘 근처에 금림군 이개윤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족두리묘에 의순공주가 잠들어 계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살아생전 지켜주지 못했던 딸을 수백년동안 지키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아버지. 조선은... 아버지에게 어떤... 나라입니까?"
"조선은 나에게 버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숙명이다..... 그래, 네게는 조선이 어떤 나라였느냐?"
"...제게 ...나라는 ... 조선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나라였기에 차마 버릴 수가 없었을 따름이었지요. ...그래도, ...돌아보면 아버지의 딸로 행복한 날이 더 많았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애숙의 나라, 그리고 모진 고생을 하고 돌아온 그녀들의 나라는 없었다. 아무도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대신해 청나라로 의순공주가 갔으니 숙안공주만은 그녀의 아픔을 위로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주었으면,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을 공주로서 품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숙안공주의 실제 삶을 찾아봤지만 별로 그녀들을 위한일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애숙과 그리고 버림받았던 그녀들에게 따듯한 위로를 보내고 싶다. 당신들 잘못이 아니었다고.. 편히 잠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