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이야기와 카를이 수사를 하는 이야기가 두가지 큰 줄기로 이 이야기는 진행된다. 초반에는 약간 유리병 편지를 쓰게 되는 두 아이가 납치되는 이야기가 시간적으로 앞서고 후에 유리병 편지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수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가 뒷이야기로 시간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유리병 편지는 13년전에 벌어진 이야기이다. 마음같아서 앞서 나왔던 두 형제가 구조되기를 바랬지만 그러지는 못했고, 두 이야기가 동시간에 진행되는 이야기였고, 두 이야기가 후에 한 공간으로 겹쳐지게 되어 훨씬 더 긴박감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종교적 광신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추종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또 여전히 사랑과 관용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생략)..
신앙을 갖고 있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믿으면서 사는 광신도들,
지옥으로 가서 썩어 없어져야 했다.
(2권, p.107)
싸이코 패스인 범인이 읆조리는 이 말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용서 받을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종교적 광신 속에 자신의 아이들을 얼마나 학대하는지 그리고 감정을 교류하지 못한 아이가 세상과 격리되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주 오래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봤던 장면인데 어린 마음에 매우 인상깊게 남았던 이야기가 있다. 뱃속에 커다란 종양을 안고 사는 한 어린 여자아이가 제작진을 바라보며 제발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애원하지만 부모님은 기도만이 아이를 살려줄것이라며 외면했다. 아마 그 당시 부모가 원치 않으면 아이를 구조할수 없는 사회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마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것 같긴 한데, 결국 몇년이 흘러 그 소녀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모의 종교적 광신에 왜 아이들은 학대받으며 살아야 할까. 이 이야기속 범인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도 목사였지만, 그는 진정으로 복음을 펼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그릇된 신념의 자신의 아이를 싸이코패스로 만들었다고 본다. 마치 그에 복수나 하려는 듯 그는 광신도들의 아이를 둘을 납치하여 돈을 뜯어낸 후 한 아이는 죽이고 한 아이를 돌려보내며 협박을 하는 패턴을 가지고 계속된 범죄 행각을 벌인다. 한 아이라도 돌려받은 부모는 절대 외부로 발설하지 않으면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그러한 침묵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고통에 쓰러지게 하는 것인가...
단순하게 이야기로만 이 <유리병 편지>를 접하면 안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릴적 아이들의 감정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한번 더 느꼈다. 세상에는 나쁜 범죄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나쁜 범죄자들은 어른들의, 사회의 무관심에 의해 길러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