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평전 - 강의한 사랑의 독립전사
이태복 지음 / 동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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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초등학생때 함께 '백범 김구 기념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등을 방문한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느껴던 가슴이 먹먹해짐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낄수가 있었다. 과연 나도 그들처럼 나라 잃은 세상이 되면 신념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윤봉길 의사의 북음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집을 떠나기 전에 남긴 그의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윤봉길 의사의 다짐과 결의를 온전히 대면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책표지에 윤봉길 의사의 사진은 우리가 늘상 보던 것이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의연한 그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 묘가 한국인들의 독립 운동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 했던 일본은 그의 유해를 가족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감옥 바깥에 묻었다고 한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효창원 내의 안중근 의사의 묘역은 유해가 없는 가묘이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에 대한 일본인의 행동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한다.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으로 인해 침략의 원흉들이 대거 피해를 입혔고, 현장에서 바로 윤봉길 의사는 체포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형사재판으로 진행되어 2심제로 운영되었지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목수을 구걸하지 말라'라는 편지를 받고 항소하지 않고 그대로 형을 집행받았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재판은 군사재판이었기 때문에 어떤 법정 투쟁도 할수 없었고 일방적인 사형 판결로 끝이 났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전사한 일본군의 유족이 드나드는 입구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봉분도 어떠한 표식도 없이 암장에 일본일들이 밝고 다니게 하였다. 무려 13년동안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행히도 유해가 고국에 돌아와 효창원에 잠들어 계시고 있다. 또한 가나자와의 윤의사 암장지는 한국인의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곳을 꼭 방문해야겠다.


거사를 치르면서도 퇴로의 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 스물다섯살 청년 윤봉길. 사형이 집행되는 그 순간에도 "더 할말 없으니 이대로 빨리 집행하라"고 말하며 마지막을 의연하게 맞이했던 청년 윤봉길. 그의 강의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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