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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평점 :
나는 참 단편에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나도 예쁘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크리스마스트리 옆 흔들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픈 마음이 들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미스터리가 좋았다. 친구 집에서 처음 만난 미스터리 책이 아마도 코난 도일의 <너도밤나무 집의 비밀>이었다. 셜록 홈스의 추리가 얼마나 명쾌하고 깔끔하던지, 그 매력에 푹 빠져서 친구한테 있던 셜록 홈스 단편집을 빌려서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우연히 EBS에서 방영되었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보았다. 그 작품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라는 것은 훗날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스터리 고전 중에 생각나는 것을 꼽자면 내겐 단연코 <너도밤나무 집의 비밀>과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다.
이 책은 '정통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우스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셜록 홈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통속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기묘한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의 다섯 가지 주제로 이야기들을 분류해서 소개하고 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첫 번째 등장하는 「먹어 봐야 맛을 알지(The proof of the pudding)」라고 하는 피터 러브시의 작품이다. 프랭크 모리스는 부인과 아들에게 폭력적인 남편이다. 형이 전쟁에서 사망하고 난 후 급기야 형수와 바람을 피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노모까지 모시고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형수가 가지고 온 푸딩에서 10센트 짜리 미국 돈이 나온다. 프랭크는 형수가 그동안 미국인과 바람을 피고 있다고 의심하고 그녀를 죽이고 경찰들에게 연행되었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한번 읽어보시길.. 프랭크가 죽이고 싶을 정도의 인물이긴 하지만 이것이 사건의 팩트라면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좀 심심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단편에 약한 나에게 깜짝 놀라 집중할 수 있게 했다면 숨겨진 이야기가 또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귀신 들린 크레센트 저택(The haunted crescent)」, 또 피터 러브시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또 한 사람의 인생 작가를 만난 것 같은 느낌. 작가를 보지 않고 여러 작품 중에 매력적인 두 작품을 골랐는데 둘 다 피터 러브시의 작품이라니. 크리스마스 하면 유령이 빠져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눈이 높이 쌓이고 바람이 우짖는 밤의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죄송하다. 당신을 실망시켜야 하니까."라며 대놓고 사과한다. 그렇다고 정말이지 벌써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곧이어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은 늑대인간이나 밴시가 없는 아쉬움을 덮고도 남으니!"라며 독자와 밀당을 한다. 가끔 난 이렇게 독자와 밀당하는 책이 좋다. 처음 느꼈던 책이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였다.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본질을 비껴가지 않도록 주위를 환기시켜준다.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을 때 갑자기 저자가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참 신선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라며 설명해주는 친절함. 초반에 이 이야기도 실망시켜 미안하다고 하지만 정신없이 화자의 크레센트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말에서야 '뭐야~'라는 말이 절로 하게 된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비밀!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겨울이면 눈을 기다린적이 많다. 게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하지만 이제는 눈이 오면 질척대는 길거리가 걱정이 먼저되는 나이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책 읽는 것은 좋다. 포근한 담요를 깔고 너무 길지도 않은 재미난 미스터리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어떨지. 지금은 연초지만 어김없이 올해 연말에도 크리스마스는 돌아올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