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 - 50편의 시와 사진으로 만나는 부산 그리고 사람
최주식 지음, 임재천 사진 / C2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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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살아왔던 부산이라는 곳을 다른 사람의 눈과 말로 다시 만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으며, 미련 없이 돌아서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광안리 바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최주식 시, 임재천 사진의 <부산, 사람>은 그런 시간을, 그 다정하고 쓸쓸하고 또 외로웠던 부산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책이다. 부산의 짠내 나는 시간이 오롯이 이 책 속에서 걸어 나와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면서 내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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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집 이송도를 불어오는 바람, 담배연기를 짧은 한숨처럼 내뱉으며 걸어가 보면 햇살이 바다를 잘게 부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면 내 눈에도 금이 가는 것 같아 찝찔한 것이 나오는 것 같아 외면하고 걸어야 한다 그러다 해안선을 따라 낮게 포복하는 순간이 온다 어디쯤인가 아름다운 생의 작별하기 좋은 바위가 바다에 빠진 해를 다시 건져 올리고 있는 것을 본다

붉은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첫차가 올 시간이다

최주식, <이송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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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출간된 책을 받아 들자마자 밀려든 것은 부채감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길러냈던 정서가 가득 담긴 책을 마주하는 것이 나는 더없이 기쁘고, 쓸쓸하고, 고마웠다.

부산이라는 장소가 이러한 아우라를 가지게 된 것은, 그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냈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터. (나도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싸우고, 되돌아서고, 광안리 바닷가에서 술 마시고 소리도 질러보고, 불 꺼진 전포동 거리를 아주 천천히 걷기도 하고, 을숙도 갈대밭을 걷기도 하고, 영주동 산복도로 꼭대기에서 한참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게 부산이었는지, 바다였는지, 끝을 모를 내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부산, 사람>은 부산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호명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고, 아직도 뜨거운 그대로인 거냐고, 바다 냄새가 지랄맞게 그리우면 한번 찾아오라고. 나는 아주 멀리 다녀왔으나 여전히 뜨겁고, 지랄맞게 그립다. 그러니 이것은 과거가 아니다.

이 책이 어떤 질문을 당신에게 던질지,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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