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김주원 지음 / FOTASIA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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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풍경을 지워버린다. 폭설이 휘몰아치는 순간은, 특히 그렇다. 사람이 죽음 직전에서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것처럼, 폭설이 내리는 풍경은 나와 대상 사이 다른 것을 모두 지워버린다. 오로지 나와 너만 남는다. 날 것으로서의 서로의 존재를 대면해야만 하는 순간이 폭설 속에 있다.

 

김주원 작가의 <WHITE> 작품들은 단지 풍경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경계가 지워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삶과 죽음, 슬픔과 기쁨, 있음과 없음의 경계는, 폭설이 내리는 순간 흐릿해진다. 경계가 흐릿해질 때 우리는 경계 너머로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다. 삶이 죽음을, 죽음이 삶을, 슬픔이 기쁨을, 기쁨이 슬픔을, 있음이 없음을, 없음이 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폭설 속에 홀로 서 있는 어린 소나무를 만났을 때, 가슴 찡한 여운과 감동을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주원 작가는 이 장면을 두고두고 곱씹었을 것이다. 폭설이 내리는 한 가운데에서, 그리고 마음 속에서 쏟아지는 그 모든 것 속에서.

 

나는 너를 들여다보고, 너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

 

그 속에서 의미는 폭발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폭발한다. ‘, 거기 있구나.’ 이 한 마디 속에서 나를 대면하고, 발견하는 순간. 폭설이 내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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