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 IV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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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브 볼프는 위르겐 몰트만의 제자이고 지금은 예일대학교 교수로서 재직중인 조직신학 교수이다. 사실 이책을 읽고 난다음에 약간 벙쪗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 신학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대략 책의 내용은 이렇다. 나태와 강요 사이에 존재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이 나태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나태를 지적하고 있다. 아무것도 참여하지 않고 그냥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강요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사상만을 주장하여 강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다. 사실 정통 기독교는 강요만을 하면서 살아오고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게 다른나라의 것만을 강요하는 사상이 팽배하다. 근본주의는 말할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성경을 성서라고 내리깔아 놓고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폭력을 위한 강요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미로슬라프 볼프의 의견은 사실 잘 몰라서 그런 얘기를 하는가보다 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나태가 더 유익한가? 근본주의 기독교라고 칭할수 있는 기독교는 총신, 광신을 합친 합동측 교단이다. 물론 장로교 태생이 그런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기독교가 점점 진보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주장과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답답하다. 우리가 그들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면서 과연 좋은 기독교가 탄생할 여지가 있는것인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의 대화로 인해서 유일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거 하나로 이슬람과 기독교가 하나의 신을 믿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대 다원주의를 따라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것인가? 볼프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느껴진다. 사실 기독교는 강요해서 믿어지는게 아니라 이리와서 한번 보시오 라고 전도하는 사람이 말하고 하나님께서 그사람들을 변화시켜 일주일에 30분 정도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어 기독교를 바꾸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예일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란분이 이런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고민이다. 우리가 강요라는 글을 빼버리고 권유라고 이야기 하면은 안되는것인가? 헬레니즘에 영향을 받았던 기독교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다른 종교와 융합을 해야하는 숙명을 가진것인가? 이 책 전반적인 글을 보면 이런 느낌이 든다.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와 이슬람과 십자군 전쟁을 한 오만한 유럽과 그 모든것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면 다원주의로 인해서 우리 기독교가 발전할 가능성이 존재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기독교의 선교모델을 가지고 말하는것 같다. 분리주의를 이야기 하면서 나치와 협력하지 않는 디트리히 본회퍼를 이야기 하면서, 다음번에는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나치와 대화와 합력할 여지가 남아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까 이 신학자는 아주 탁상공론을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폭력성을 지닌 기독교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핍박하려고 하는 공적인 종교와 다른 신앙을 가진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차이로 인한 다원주의적 대화에서는 지혜를 공유하는 것이고 사랑안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니까 그들과 대화하자는 아주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를 해놓고 있다. 이게 과연 옳은 이야기인가? 이슬람이 일부다처제를 이용하여 한국에서 결혼하여 이슬람의 숫자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고 미로슬라브 볼프와 같은 신학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몰락되고 있는 서부 기독교의 모델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볼프의 얘기를 듣자하니 그가 하려던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차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공통점으로 인해서 서로의 대화로 발전하자라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놈이다. 볼프에게 물어 보고 싶은것은 그렇다면 대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이야기 한다면 그럼 이단과의 대화에서도 발전방향이 있다는건가라고 물어보고 싶다. 나는 이단들과 여러 대화를 나눠보고 생긴 결론은 그들은 대화로서 해결되는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이야기를 해보아야 겠는데 그들에겐 그냥 폭력이 아니라 강요가 일삼아지고 속임수가 판을 치고 우리기독교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이게 비단 공통점으로 대화를 해서 기독교를 발전시킬 여지가 있는것인가라고 물어보고 싶다. 볼프 이양반은 전도도 안해보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모양이다. 인간은 영적 존재라서 우리가 이단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빠지기가 매우쉽다. 나도 그런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두렵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이슬람보다 이단이 훨씬 많다. 그럼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시킬 여지가 있다는 얘긴가? 가소롭고 웃긴 헛소리로 보여진다. 세상법을 따르지 말고 우리 기독교의 법을 따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대화를 해야 하고 그들과의 논의를 해야 한다고? 그들은 거짓말치고 인간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사탄앞에서 그런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사실 볼프의 이야기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형편없는 이야기이다. 실천적인 지침을 따르자면 강요와 나태 중간에 위치해 끈질기게 매달려야 하는게 기독교 이다. 나도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단과의 대화에서 얻은건 이사람들은 미쳤구나라고 생각이 안들어진다. 그냥 미친거다. 아무리 얘기해서 기독교를 발전시키려해도 그들에겐 하찮은, 기독교를 본딴 교리에 젖어 있다. 코란도 기독교와 유대교와 섞여 있는것이다. 그리고 유대교도 같은 신을 믿는다고 이야기 했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말이 거짓이란 말인가? 유대교는 그냥 눈이 멀어 있다. 이방인의 수가 채워지기 전까지는, 그들은 기독교를 믿지 못한다. 과연 그들과의 대화로 우리가 발전가능한게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발전이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이글에서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례가 전혀 없다. 그럼 나치와도 대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인간은 대화로 언어로 많은 발전을 하지만,  모든 발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되는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사랑인가? 그게 정말 사랑으로 느껴져서 그 이상적인 상황에서 모든게 좋아질거란 낙관주의 빠질수 있는 것인가? 공적인 기독교가 있어야 할자리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균형적으로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는게 맞는 이야기이다.


 사실 자유주의라고 이야기 하는 놈들의 이상은 웃긴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얘기의 핵심은 성경을 소설책으로 보고 윤리적인 사랑만 남은채 아무런 유익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이긴 하지만, 성경을 무시하는 짓은 참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일이다. 성경이 폭력으로 가득차게 보였다면 그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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