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화 - 1940, 세 소녀 이야기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독서노트]

'몽화
'

 

새벽3

식은땀이 머리에서 타고 내려와 귓속으로 들어가려는 걸 얼른 훔쳤다.

귀속이 곪아서 알았던 기억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얼굴이 하얗게 달아오른다 몸이 두-둥 떠 있는 느낌이 싫지는 않다.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바뀔 때 날아오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때 설레며 봤던 만화책 한 장면인데 백조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잠시 머물렀던 부분에서 천사의 부름을 봤고 당장 날아갈 것처럼 너무 아름다웠던 그 장면이 왜 떠올랐을까?- -둥 떠 있는 느낌이 백조로 날아올랐을 때 느낌과 같을까. 라고 잠시 생각한듯하다.

물 한 모금이 간절했다.

백조가 되어 날아가 물을 마시고 현실로 돌아온 듯 했다.

요즘 독감이 고생스럽다던데 자기 전 먹은 감기약 탓일까? 꼭 그렇진 않다.

전날 [몽화]를 읽고 머릿속이 혼잡한 도시 속 회로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듯 괴로웠다. 억울함의 분노가 귓속에서 울려대는 통에 억지로 잠을 청하고자 귀마개를 했다. 자면서도 계속 생각으로 똘똘 뭉쳐진 묵직함이 나를 깨웠고 잠을 들 수 없었다.

읽다만 [몽화]를 아침 6시쯤 다 읽어서야 머리가 진정되었고 무심했던 나를 일깨웠다.

 

프롤로그에 세 소녀가 꿈을 이야기한다.

정인은 현모양처, 은화는 작가 ,은실은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꿈을 확인했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꿈의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술 한 잔씩 기울이며 시작하는 이야기가 기분이 좋았고 꿈을 이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했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결의에 찬 마음이 가득 담아졌다.

 

일본으로 강제 징집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야반도주하듯 떠난 아버지를 찾겠다고 만주로 떠난 어머니가 은실을 이모에게 맡겨진다.

이모를 본 순간 마음에 품었던 꿈도 깨졌고, 11살 동수라는 남자아이를 돌보는 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집 앞에 흐르는 개천을 끼고 양쪽으로 이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개천의 동쪽에는 게딱지같은 집들이, 서쪽으로는 멋진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는 집 구경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아침에는 교복을 입은 양 갈래 소녀의 집을, 저녁엔 기생집을 기웃거렸다.

동수가 사탕 얻어먹을 요량으로 자주 드나드는 일로 양 갈래 소녀인 정인과 화월각에 사는 은화와 얼결에 친구가 되었다.

정인이 아지트라며 데리고 간 곳 동굴 안에 은화가 있었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우리들만의 아지트라고 칭하며 우정 맹세로 셋의 약속은 단단해졌다.

-언제라도 마음이 어지럽거나 힘들 때 이곳으로 오세요.

이곳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우리들만의 아지트니까.

 

우리가 처한 상황은 우리가 택한 게 아니잖아. 운명일 뿐이야.

 

운명인 걸까?

 

1943년 조선총독부에 육군대장 아베 노부유키가 부임해 오면서

부녀자들의 연행이 심해졌고 그 선봉에 정인 아버지가 역겨운 부정을 일삼는다. 정인과 정태를 지키겠다고 불란서로 유학을 시켰고, 모집책이면서 자식을 안보내면 얼굴이 안 선다는 말로 강제징용을 머슴인 칠복을 보낸다.

 

정인은 불란서로 유학을 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라는 편지로 근황을 알게 되지만 은실도 은화도 답장을 쓰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은화는 화월각에서 나와 방직공장을 소개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미래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요릿집이라는 간판을 걸어 두고 조선 위안부들의 강제 매춘을 강요했고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은실은 이모 덕분에 일본으로 가 공부하면서 화과 가게에서 일을 하며 지낸다. 태일이 찾아오지만 얼룩진 그날의 일로 냉정했고, 아버지 소식을 이모에게 듣고 탄광으로 아버지를 만나면서 칠복이 아버지를 보살펴 줬다는 것에 감사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으로 끌려와 삶 같지도 않은 삶이 뒤엉켜진 고통을 살고 있는 위안부들의 억울한 삶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 소녀의 고통을 몽화라는 책에 녹아있다. 점점 사라져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살려 놓겠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면서 울고 있을 소녀들의 마음과 억울함을 내 마음에도 담아졌다.

 

여자도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차근차근 해나가리라 다짐했고, 조금 더 단단해졌고, 조금 더 튼튼해진 영실은 살아 내는 일에 조금 더 자신을 갖게 되면서 살아간다.라는 글이 가슴이 절절했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이 시대가 누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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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정리


-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들의 강제 인력 수탈

     강제징용 광부, 강제 매춘, 생체실험(731부대) 등 사람들을 짐 나르듯 했고,

     ​구타와 죽임을 서슴없이 했다.


- 가투 놀이 (꽃쪽 초장 또는 중장을 읽어서 엽쪽을 찾아내는 놀이)
1920년에 3.1운동에 의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문학 장르인 시조가 자리매김하면서 생겨났고,

놀이의 주체가 부녀자층이였고, 1940년엔 쉬쉬하면서 권력의 그늘에서 있는 아녀자들이 했다.라는 내용. (서경덕 시조, 김인후 시조, 정철 시조 내용 )

1940년쯤 일제가 한국어 교육을 금지했다.


-1940211일 소위 기원2600조선총독부는 이날부터 창씨개명을 실시

-한국광복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인) 1940년에 생겼고, 무장투쟁을 목표로 하는 단체들의 활약들이 곳곳에 들어났다.

전쟁동원제도를 피하거나 학도지원병이 싫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자는 조선학생들이 활약.

 

 

일본들의 강제 인력 수탈을 위한 거짓광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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