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유희경 시인의 신작 에세이 <천천히 와>는 화려한 문장이나 자극적인 서사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조용한 고백으로 채워진 25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산문집이자, 독자가 직접 문장을 따라 써볼 수 있는 필사 에세이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시집을 골라 와서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립니다. 어떤 날에는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바나나가 빨리 익기를 기다리고, 또 다른 날에는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기다립니다. 이처럼 <천천이 와>는 기다림과 느림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작가의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을 애틋하게 살핍니다.
유희경 시인은 매사에 느린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속도에 맞는 일을 찾고 싶어하며, 마음 놓고 한없이 느리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시집 전문 서점을 천직이라 여기며, 몇 년째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그 느림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작가는 창밖의 풍경, 서점의 손님들, 버스의 승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위 ‘한눈팔기’를 자주 합니다. 이 한눈팔기는 집중력의 결핍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의 삶을 천천히 바라보려는 다정한 시선입니다. 그의 문장 속에는 그런 시선에서 비롯된 진지함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의 오랜 문학적 동료인 시인 오은은 유희경 작가의 기다림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독자 역시 이 책을 천천히, 작가의 마음을 음미하며 읽기를 권합니다.
또한 이 책은 독자가 주요 문장을 따라 써볼 수 있도록 필사 페이지를 마련해두었습니다. 단순한 따라 쓰기를 넘어, 문장을 손으로 옮기며 작가의 감정을 옮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책은 180도 완전히 펼쳐지는 누드 사철 제본 방식으로 제작되어 필사하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아름답고 견고한 인상을 줍니다.
도서 <천천이 와>는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조용한 위안을 주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