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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진짜 공부 - 10대를 위한 30가지 공부 이야기
강원국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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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평생 학습의 시대이다.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과 급변하는 세상, 더 이상 경제 호황 시대를 살지 않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한 가지 직업만으로 살 수 없다. 터득한 기술이나 축적한 지식을 우려먹을 기회를 제거당할 만큼 급격한 기술 발전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는 의미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면 학습에 대한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적응을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완벽 주의적 자세보다는 자꾸 실패해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요구된다. 기성세대의 학습법이나 대입을 위한 공부가 학습의 종착역이 될 수 없다. 명문대 타이틀이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담보할 수 없기에.

공부라는 것이 의무로만 다가오면 괴롭고 힘들기만 하다. 학창시절의 내가 그랬듯.
하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첫 번째 바탕은 바로 공부 동기를 바로 세우는 것.

강요에 의한 공부는 고역이다. 모든 과목을 두루 잘하려는 욕심에서 적성과 먼 과목을 잘 하기 위해서 맛보는 좌절감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칭찬과 같은 외적 동기는 한계가 있기에 자신이 잘 하는 것을 더욱 잘하게 하려는 데에서 내적 동기를 탄탄히 할 것을 강조한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자는‘애호감’이다. 자기존중감, 자아효능감, 애호감을 통해 동기를 찾아나가되 이 세 가지는 모두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것.

누구나 자신만의 강점이 있기에 그것을 찾아 동기를 찾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며 누군가를 이롭게 하는 경쟁의 공부가 아닌 협력의 공부, 주도적인 공부, 가슴과 손발로 하는 공부, 평생공부로 향하는 길로 안내하고자 한다.

저자는 마음공부를 단단히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한 실천의 기술도 귀뜸해 주는데 의지보다는 습관의 힘에 맡겨야 한다는 것, 구경, 목격, 주목, 답사, 조사, 관조, 통찰로 이어지는 관찰력의 중요성도 전한다. 경주마처럼 옆을 가리고 질주하는 것이 아닌 남이 지나치는 것을 포착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기에.

항상 바쁜 청소년의 시간 관리에 대해서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비교하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을 전하며 걷기와 수면 휴식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은근함과 끈기야말로 학창 시절에 키워야 할 자질이기에 지구력을 기르는 일이 십 대의 학습 과정에서 터득하게 되는 인생의 기술임을,이것이 체력에서 나오기에 자신의 몸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도 깨우치게 된다. 공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아는 젊은이는 주어진 모든 과제와 인생의 시련에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넘쳐나는 지식 정보 시대에 정보를 선별하고 요약하는 능력을 기를 것, 사고력, 어휘력, 독서법에서부터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부모가 아이의 인생의 좌표를 가리키기 위해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을 십 대의 수준에서 하지만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공부는 결국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을.
청와대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이었던 저자가 어른들을 위한 글쓰기 강의 대신 행복의 관문인 학습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진짜 공부에 대한 십대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이 가득하다. 이것이 저자가 펜을 든 이유일 것.

소화가 쉬운 간결한 문장으로 부담 없이 읽기 용이하여 공부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에 이르기 위한 이 땅의 십 대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로 손색없는 책이지만 뒤로 갈수록 기성세대도 얻고 취할 것이 적지 않다.
궁극적으로 공부의 목적인 나의 공부는 무엇을 향해야 할까?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이 책은 이러한 의문을 갖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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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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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보다는 종이의 물성을 사랑하는 나의 시각적인 탐욕까지 충족시키는 멋드러진 표지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런 무게감이 없어 가방에 넣고 다닐만 했던 점도 맘에 들었던 책.
게다가,
되새김을 요하는 매력을 지닌 문장들은 소장 욕구에 마구 불을 지폈다.

때때로 책은 나에게 지음(知音)과 같은 존재이다.
세속에 돌연 염증이 날 때,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희망차게만 살아가기엔 고된 삶의 높은 장벽들을 마주할 때
책은 나의 감정받이가 될 누군가에 대해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좋을 상대이며, 그 누구보다 당시의 내 기분을 잘 알아주고 완벽히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왜 책을 읽어왔던 것일까?'
단지 위로를 받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헤르만 헤세라는 저명한 문학가가 남긴 글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과 숙고를 나로부터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는 독자에게 모호하게 설명되지 못 했던 책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단순히 모든 책을 집어 삼킬 듯 탐독하는 독서에 대해서는 경계할 것을 종용한다.

단순한 독서에 대한 예찬을 넘어서는 애서가의 독서지론은 '장서를 다루는 법', '독서의 유형과 효용', '책을 고르고 읽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소재에서 궁금해 할 다양한 이야기들를 펼쳐낸다.
깐깐하고 엄격, 근엄한 분위기가 짐칫 느껴지긴 하지만, 단단한 자아와 건강한 내면을 지닌 어르신의 풍부한 경험과 성찰로 부터 얻은 혜안을 큰 수고 없이 경청하는 듯한 기분 좋은 경험이다.

내가 소장할 책을 고르는 과정은 흡사 '좋은 친구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도 같다.
막역하지 않은 관계임에도 자기생각을 강요하는 이는, 표지가 근사해 읽었지만 실망이 더 컸던 책을 떠올리게 한다.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가고픈 소중한 친구는 첫 눈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시나브로 소울메이트가 된다. 나만의 스테디셀러가 되는 책이 이와 닮았다.
이 책은 이내 나와 이러한 관계가 되었다.

많은 책들 속에 숨어있던 한 권의 가치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두 번째 읽을 때 그 책의 진수를 알게된다는 그의 조언처럼 난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을 때 또 다시 경건한 자세로 오롯이 문장들을 따라가볼 것이다.

백여년 전 작가의 생각을 따라 현재를 살아내는 독자가 교감하는 과정 속에서 내 안에는 정서적 안정과 충만함으로 차올랐다.

독서는 현실을 잊고 도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되기 위함이어야 한다는 것.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 한층 성숙한 책읽기를 권하는 그의 조언을 따라 정신에게 저지르는 가장 고약한 범죄라는 애정 없는 독서, 경외감 없는 지식, 가슴이 텅 빈 교양으로 나를 채우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여러분도 망망대해 속에서도 영혼의 성장을 위한 책읽기의 항해에서 내일의 돛의 방향은 좀 더 확신에 차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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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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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계 미국인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글의 첫 머리가 모든 것을 담고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이 책이 어떤 것을 다룰지 미리 다 쏟아내고 있지만 '엄마'라는 두 음절이 주는 울컥함이 있듯 보편적 정서를 다룰것임을 쉽게 예측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장소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며 책을 넘기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게 되지요.

H마트는 한국인 엄마를 둔 딸이 이민 사회에서 엄마를 온전히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바로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늘, 배추, 만두피 등 한국인의 전통상을 짓기 위한 재료가 가득한 곳이지요. 그 주변은 이미 가지각색의 아시안 상점과 식당이 들어서 일종의 아시안 부도심 역할을 하는 곳이며 주인공에게는 엄마를 추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쉼터일 테죠.

모성에 대한 딸들의 감정은 참으로 각별합니다. 이 책에서 엄마를 기억해 내고 엄마와 같은 반쪽 정체성(미국인이지만 한인계이고 한국음식을 너무 사랑하지만 한국말에는 서툰 주인공)으로 살던 주인공에게 '음식'은 너무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사춘기의 혹독한 방황기를 거쳐 간신히 자립한 주인공 '미셀 자우너'의 엄마는 주위의 부모들처럼 귀에 듣기 좋은 말로 품어주는 따뜻한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모녀 사이가 마냥 좋을 리 없었겠죠. 하지만 타지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조금 더 성숙해질 무렵 관계가 개선될 기회가 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엄마의 병을 알게되고 그녀의 헌신이 무색하게 엄마는 결국 딸의 곁을 떠나고 마는데요..

엄마의 부재에 대한 아픔을 더욱 극복하기 힘겹게 만드는 것은 엄마가 즐겨 해준 '한국 음식'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만이 알고 있던 레시피였기에 물어볼 존재가 사라지고 난 이후의 절망감은 더욱 클 수 밖에요. 음식을 통한 모녀간의 끈끈함은 백인 아버지가 대신할 수 없죠. 오히려 아버지의 대처는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미셀은 한국 요리를 알려주는 유튜버 망치여사를 통해 요리 재료를 하나하나 구입하고 손수 만들어 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없애지 않으며 새 땅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은 자신의 엄마와 같이 자신의 뿌리를 완벽히 내리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음식이 너무나 중요한 매개가 되었듯 저자의 음식묘사는 너무나 리얼하고 새로워서 눈 앞에 요리하나씩을 척척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즐겨먹던 흔한 한식마저도 새로이 느끼게 해줄 정도로요.
한식만들기를 통해 거꾸로 엄마의 흔적을 찾아가며 온전한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던 그녀는 완연한 성인으로서의 통과의례를 거칩니다.

그녀의 엄마 역시 낯선 이국땅에서 불완전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며 딸의 온전한 방패막이 되어 줄 수 없었기에 따뜻함보다는 독설도 자주 하는 혹독한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음식을 잊지 않도록 열심히 먹이고 교육시켰을 터.

지인의 편지 속에서 묘사된 어머니의 예술가적 열정을 읽으며 자신이 알던 모습과 괴리를 보여주지만
결국 엄마도 본연의 모습으로는 강인하게 딸을 지켜낼 수 없을까 두려웠던 연약한 존재였을 것일 겁니다.

그녀는 지금 꽤 성장하여 한국 페스티벌에 초대되는 'japanese breakfast'라는 그룹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가 되었으며 엄마의 예술성도 물려받았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온갖 자질구레한 자신의 성장의 꾸러미 자취들을 하나도 내버리지 못하고 품어왔던 엄마를 뒤늦게 발견하며 자신에 대한 강한 사랑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한국인 특유의 아이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지더라구요.

서양사람 같은 살가운 겉치레를 늘어놓는 사람이기 보다는 남의 원하는 것을 기억했다가 무심히 챙겨주는 섬세함을 지닌 전통적인 한국식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나와 분리되지 않아 저자의 슬픔이 고스라니 전달되었던 책.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보는것 내가 입는것 내가 사는것 모든구성이 나를 형성한다는 어머니의 말처럼 추억은 시각 후각 속에서 별안간 주인공을 더 힘들게 하지만
김치 같은 발효음식을 인생에 비유하듯 우리의 인생과 닮은 한국의 음식을 직접 담그며 엄마를 추억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더 당당히 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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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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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절대로 잠자리에서 읽으면 안 된다는 저명한 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뜬금포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

도킨스의 경고는 무서움때문이 아닙니다. 이 책이 흥미진진해서 잠자리에서 펼친다면 잠에 들 수 없다는 의미.

그 정도의 충동을 느끼지는 못 했지만 흥미로운 책임은 분명합니다. 꽤 예쁜 책 표지의 일러스트로 거부감을 덜어주기도 했구요. 아마 그 방면에 더 전문적인 지식 보유자라면 그가 말한 짜릿함을 몸소 경험했을 듯 해요.

저자 '제프호킨스'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생존번식에 관계하는 본능적인 기능의 '오래된 뇌'와 그 뇌를 통제하는 '새로운 뇌'가 있다고 해요.

이 새로운 뇌의 작동방식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서술입니다. 뇌에서 가장 새로운 부분은 사람과 포유류에만 존재한다는 '신피질'이라는 것으로, 뇌의 껍데기 부분이죠.
인간의 뇌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이 신피질에서 '지능'을 만든다고 해요. 신피질은 큰 냅킨만 한 크기의 조직으로 제각각 다른 일을 하는 수 십개의 영역으로 나뉩니다. 아주 작은 크기의 이 공간 안에는 신경세포가 10만개, 그 신경들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는 5억개나 됩니다.

각 영역은 수천 개의 '피질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피질기둥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되어 세계를 인식하고 지능을 창조한다고 해요. 뇌는 예측모형을 만들고 뇌에 입력된 정보가 예측과 불일치하면 수정하는 방식으로 복잡한 세계 모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바로 이것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이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인데요,

기존의 과학자들은 감각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정보가 입력되어 뇌(신피질)의 특정장소에 수렴된다고 본 반면, 저자는 태어날 때의 신피질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험을 통해 풍부하고 복잡한 세계를 배우는데 감각을 통해 입력되는 정보의 변화(움직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이런 변화를 신피질에서 감지할 때 '기준틀'을 사용해서 세계를 인식하는 모형을 만들어 낸다고 봅니다. 기준틀이 구현되는 방식에서 다소 논쟁적인 부분이 발생할때는 각각의 피질기둥들이 '투표'를 하여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면이 재미있어요.

각각의 피질 기둥들이 무수히 쏟아져 입력되는 정보들에 대해 투표를 하고 하나의 답을 완성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매커니즘을 도킨스는 '뇌속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라 부릅니다.

즉, 뇌는 하나가 아니라 '독립적인 수천 개의 뇌'로 이루어져 있고, 각 피질기둥들의 '민주적 합의로 도출된 결과'가 바로 '우리의 지각'이란 설명이죠.

뇌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합의와 분쟁과정이 있다는 것이 참 새롭고 재미난 개념인 것 같아요. 또한 무의식적으로 생존 기계를 굴리는 '오래된 뇌'와 운전석처럼 그 위에 자리잡은 '신피질' 사이에 벌어지는 몸싸움이라 표현한 부분이 흥미롭네요.
당이 소중했던 시절의 오래된 뇌는 맛있는 케잌에 무조건 먹으려 반응하지만, 당류가 넘치는 현대사회에서는 새로운 뇌에서 그간의 교육을 통해 당섭취를 낮추려 케잌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책의 2부에서는 기계지능도 다루고 있어요.
21세기에는 지능 기계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지만 인간의 실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AI는 '지능'을 갖지 못 했기에 거꾸로 인류를 위협하게 된다는 걱정은 기우라는 것이죠.

체스를 두는 A.I는 인간의 실력을 능가하는 기술적 진전은 가능하겠지만,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는 못 하는 것이 한계이며 이는 인간이 지능을 만들어 내는 매커니즘이 적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능로봇의 출현을 위해서는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설파합니다.

저자 '제프 호킨스' 이론의 참신함은 1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이 책의 요지가 됩니다. 요약하자면,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신피질'이 주로 감각 입력을 처리한다고 생각했지만, 신피질은 주로 '기준틀을 처리하는 곳'으로 이 기준틀은 뇌에게 어떤 '대상의 구조'를 배우게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 뇌는 이 '기준틀'을 사용하여 대상을 정의함으로써 대상 전체를 동시에 조작할 수 있다는 구조학습법을 통해 뇌신경학계의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론을 구축해 냈다는 것입니다.

내용이 술술 읽히는 쉬운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타겟대상을 '지적 호기심이 많은 비전문가 독자'로 상정해둔 만큼 읽어볼 만한 재미는 충분해 보입니다. 뇌의 신비로움에 관심을 둔 독자로서 뇌과학 방면의 이 같은 다양하고 활발한 연구를 기대하며 또 다른 발견을 거듭하기를 조용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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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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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가..? 아니면 비문학?..."
서점 매대를 뒤적대던 내게 이 작품은, 북커버만으로는 장르를 추정하기 힘든 정체성이 모호한 책 한 권으로 비쳤다.

첫인상은 그랬다. 허나
책을 덮은 이후에는 더 큰 혼란에 빠졌으니 이유인즉, 한 학자의 일대기가 작가 자신의 인생과 묘하게 얽혀있어 갸우뚱하던 차,
술술 읽힐 만큼의 흥미를 끌지는 않았던 초반의 위인전 같은 서술이 점점 추리소설처럼 궁금증을 자아내며 속도에 박차를 가하며 읽혔더랬다.

혹시라도 책을 보실 분이라면 무지성으로 편견 없이 순수하게 읽으시라 조언하고 싶다. (이미 글을 읽고 있다면 이쯤에서 멈춰주세요..)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스포일이다.
그렇다. 이 책은 '스포일'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간 문학이 아닌 작품에선 접하지 못했던 생경한 구조의 반전도서다.

초반에는 19세기 물고기 분류에 집착어린 열정을 쏟아 당시 인류에 알려진 1/5의 어류에 이름을 붙였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불굴의 의지와 그의 극한의 시련을 극복해내는 극적인 삶의 그릿(GRIT)을 찬양하듯한 메시지로 흐르는 듯 하였으나... 스탠포드 대학에 동상이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그의 공적을 치하하는 듯했던 교훈적 묘사는, 마침내 그가 열을 올렸던 우생학에 대한 오류와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강화하며 '열성 인간' 제거에 힘썼던 한 인간의 광기어린 역사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추앙받던 위인을 철저히 짓밟는다.

극단적 우생학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민낯을 드러내며 평화상까지 수상한 그가 전쟁을 반대한 이유가 사실은 그로 인해 희생될 '인재'들을 대체해 세상에 '유전적 부적합자'들 만이 남게 될 것에 대한 우려때문임을 알게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위인에 대한 배신감에 경악하게 되고,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를 법제화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가 생전에 명망있는 삶을 누렸다는 데서 작가는 격노한다.

혼돈과 미지의 세계인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고 하나의 계층구조로 획일화함으로써 인류는 혼돈 속에서 명료함과 뿌듯함을 느꼈을 지 모르지만 그 인간이 명명한 분류체계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때문에 당연시했던 양서류, 포유류 같은 '어류'라는 분류 체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비늘이 있는 물고기 형태의 유사성만으로 '어류'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상어의 폐기관은 오히려 인간을 닮았음을 인정해야 하는 오류의 더미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

유전자에서 필수불가결한 다양성을 제거하려 했던 우생학자들의 자기기만에서, 인간의 편의에 의해 규정지워진 그 체계 자체의 오류를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오만에 절로 숙연해지는 것이다.

지구 상의 생물을 실제 검토한다면 우리가 무시하던 까마귀는 인간보다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도구나 언어사용에 있서도 뇌의 큰 크기면에서도 유일한 존재가 아닌 한낱 인간이, 자신들을 가장 우월한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린다는 것에 무리수가 있었다.

어떤 과제에서 우리보다 뛰어난 부분이 동물에서 발견되면, 인간은 그것을 지능이 아닌 본능으로 치부하며 깍아내리곤 하는데 이를 '언어적 거세'라 이른다. 이는 우리의 언어로 동물들의 중요성을 박탈하는 방식이며 인간이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에 앉는 수법일 뿐이었다.

한 저명한 분류학자가 한 평생 바쳤던, 극한의 시련도 극복케 했던 그 사물의 '범주'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건 혼돈..

작가 밀러는 '범주'를 부수고 나온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며 과학은 진실을 비추는 횃불이기 보다는 도중에 파괴도 일으키는 무딘 도구일 뿐이다.

작가 밀러는 경고한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고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두려워 말 것을.
하나의 범주란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의 경우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을 독자에게 깨우친 작가답게 그 위험한 허구의 사다리를 쪼개고 나온 듯 작가는 떠난 이성의 자리에 동성의 애인을 대체하며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힌다. 이 부분이 이 책의 반전만큼 충격적이었던 나는 아직 당연시된 범주의 틀에 갇혀있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문화충격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처녀작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색다르고 독특한 글의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경탄해 마지 않게된다. 처녀작임이 오히려 놀라울 뿐.. 이 점에선 굳이 책날개의 방송계 퓰리처상이라는 피버디상 수상여부나 과학전문기자라는 타이틀도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판화의 에칭과 같은 거친 선들로 묘사된 책 속의 일러스트가 책의 미스터리함을 배가시켜줌을 잊지 않고 싶다.

글에 따르면 무언가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됨으로써 '실재'가 되버린다.
최근에는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애초에 하등한 인간의 먹을거리에 지나지 않는 '물고기'라는 이름을 '물살이'로 바꾸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한다.
나는 또 어떠한 오류들을 굳건하게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었을까 자꾸만 되묻게 되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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