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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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계 미국인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글의 첫 머리가 모든 것을 담고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이 책이 어떤 것을 다룰지 미리 다 쏟아내고 있지만 '엄마'라는 두 음절이 주는 울컥함이 있듯 보편적 정서를 다룰것임을 쉽게 예측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장소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며 책을 넘기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게 되지요.

H마트는 한국인 엄마를 둔 딸이 이민 사회에서 엄마를 온전히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바로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늘, 배추, 만두피 등 한국인의 전통상을 짓기 위한 재료가 가득한 곳이지요. 그 주변은 이미 가지각색의 아시안 상점과 식당이 들어서 일종의 아시안 부도심 역할을 하는 곳이며 주인공에게는 엄마를 추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쉼터일 테죠.

모성에 대한 딸들의 감정은 참으로 각별합니다. 이 책에서 엄마를 기억해 내고 엄마와 같은 반쪽 정체성(미국인이지만 한인계이고 한국음식을 너무 사랑하지만 한국말에는 서툰 주인공)으로 살던 주인공에게 '음식'은 너무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사춘기의 혹독한 방황기를 거쳐 간신히 자립한 주인공 '미셀 자우너'의 엄마는 주위의 부모들처럼 귀에 듣기 좋은 말로 품어주는 따뜻한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모녀 사이가 마냥 좋을 리 없었겠죠. 하지만 타지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조금 더 성숙해질 무렵 관계가 개선될 기회가 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엄마의 병을 알게되고 그녀의 헌신이 무색하게 엄마는 결국 딸의 곁을 떠나고 마는데요..

엄마의 부재에 대한 아픔을 더욱 극복하기 힘겹게 만드는 것은 엄마가 즐겨 해준 '한국 음식'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만이 알고 있던 레시피였기에 물어볼 존재가 사라지고 난 이후의 절망감은 더욱 클 수 밖에요. 음식을 통한 모녀간의 끈끈함은 백인 아버지가 대신할 수 없죠. 오히려 아버지의 대처는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미셀은 한국 요리를 알려주는 유튜버 망치여사를 통해 요리 재료를 하나하나 구입하고 손수 만들어 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없애지 않으며 새 땅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은 자신의 엄마와 같이 자신의 뿌리를 완벽히 내리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음식이 너무나 중요한 매개가 되었듯 저자의 음식묘사는 너무나 리얼하고 새로워서 눈 앞에 요리하나씩을 척척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즐겨먹던 흔한 한식마저도 새로이 느끼게 해줄 정도로요.
한식만들기를 통해 거꾸로 엄마의 흔적을 찾아가며 온전한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던 그녀는 완연한 성인으로서의 통과의례를 거칩니다.

그녀의 엄마 역시 낯선 이국땅에서 불완전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며 딸의 온전한 방패막이 되어 줄 수 없었기에 따뜻함보다는 독설도 자주 하는 혹독한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음식을 잊지 않도록 열심히 먹이고 교육시켰을 터.

지인의 편지 속에서 묘사된 어머니의 예술가적 열정을 읽으며 자신이 알던 모습과 괴리를 보여주지만
결국 엄마도 본연의 모습으로는 강인하게 딸을 지켜낼 수 없을까 두려웠던 연약한 존재였을 것일 겁니다.

그녀는 지금 꽤 성장하여 한국 페스티벌에 초대되는 'japanese breakfast'라는 그룹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가 되었으며 엄마의 예술성도 물려받았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온갖 자질구레한 자신의 성장의 꾸러미 자취들을 하나도 내버리지 못하고 품어왔던 엄마를 뒤늦게 발견하며 자신에 대한 강한 사랑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한국인 특유의 아이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지더라구요.

서양사람 같은 살가운 겉치레를 늘어놓는 사람이기 보다는 남의 원하는 것을 기억했다가 무심히 챙겨주는 섬세함을 지닌 전통적인 한국식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나와 분리되지 않아 저자의 슬픔이 고스라니 전달되었던 책.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보는것 내가 입는것 내가 사는것 모든구성이 나를 형성한다는 어머니의 말처럼 추억은 시각 후각 속에서 별안간 주인공을 더 힘들게 하지만
김치 같은 발효음식을 인생에 비유하듯 우리의 인생과 닮은 한국의 음식을 직접 담그며 엄마를 추억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더 당당히 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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