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히스테릭 이대택 박사의 인간과학 2
이대택 지음 / 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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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후 세계는 '성인병의 민주화' 를 겪고 있다. 그 첨병격인 비만은 특히 무섭도록 세를 불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서구는 물론 이제 개발도상국과 경제적 취약계층까지 위협받고 있다. 의료인, 휘트니스 강사, 사회 운동가들이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악전고투 중이지만 전세는 역적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복적 시각들이 등장했다.

캄포스의 비만신화가 그렇고 샤를롯의 팻앤프라우드 같은 저서가 등장했으며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권익증진 단체의 활동을 소개한 인류학적 보고서(Fat 돈쿨릭, 앤 메넬리 엮음)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비만은 위험하다' 는 오래된 사회적 합의에 의문을 표하며 통계학, 사회학, 성정치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비만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하고 '포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를 받아들여 국내에도 비슷한 책이 출간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대에 차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결론은 실망, 그것도 큰 실망이었다.


1. 미국 논문 번역집, 그 이상의 의미부여가 어려운 초반부

국내 비만학회와 연구자들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이 책에 이용된 자료 가운데 국내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전무하다. 오로지 미국산 논문들을 계속해서 열거하고 그것들의 트집을 잡으며 '비만은 없다' 라는 공격적인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비만이라는 질병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통계상의 조작이며 의학계, 식품업계, 피트니스 업계가 수조원의 이권을 나눠먹기 위해 부풀린 허상이라는 말인데 과연 이 논의에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을까?


일단 제일먼저 저자인 이대택 교수는 비만 연구의 고전 '간호사 연구'의 문제를 말한다. 간호사 연구로 말할 것 같으면 하버드 대학교에서 1995부터 무려  16년간 11만5천195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병력한 연구의 고전이다. 비만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교양서들은 이 간호사 연구의 지표들을 활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연구에서 흡연자를  제외하고 비흡연여성들만 놓고 살찐사람 마른 사람을 비교 했다' 며 여기서 얻어진 결과는 변인통제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밖에도 사망자의 수가 전체 집단에 비하면 5% 미만이라 비만과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알기엔 너무 규모가 작다는 식의 문제 제기를 하며 결국 '비만이 건강에 나쁜게 아니라 비만과 건강상은 모종의 관계가 있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정확히 말하려면 좀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는 결론을 내린다. 뭔가 충격적인 고발을 할 것처럼 무게를 잡던 도입부에 비하면 용두사미에 가까운 결론이다. 



2. 비만이라는 기준의 자의성에 대하여

장을 넘겨가면 저자는 '비만 평가의 불안정성'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비만이라고 이야기하는 기준이 객관적 공신력이 없음을 주장한다. 이 장의 지면은 8할 이상이 BMI(신장과 체중제곱의 비로 비만도를 측정하는 전통적 지표)로 이루어지는 비만평가의 부당함을 지적하는데 할애되어 있다. 하지만 '관건은 체중이 아니라 체성분이다' 라는 이야기가 상식이 되어버린 시대에 BMI를 까내리는데 이 정도로 공을 들일 필요가 있나 의심스럽다. 비만 진단 지표로 BMI보다 체지방률을 선호하는 풍조가  대중화 되어 동네 보건소보터 비만 클리닉까지 다들 '인바디' 를 받들어 모시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런데 막상 중요한 이야기인 체지방에 대한 장은 단 1한장 챕터 23장 뿐이다. '15%, 25%로 설정된 이른바 표준 체지방률은 의학적 근거가 없고 몸짱기준인 10-15%는 운동선수를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허황되다. 지나치게 노력할 필요없다. 건강을 위한 적절 체지방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는 식의 언급으로 짧게 마무리하고 있다. 막상 중요한 논의에 대한 근거는 부족하고 첫장부터 줄곧 반대를 위한 반대 뿐이다. 




3. 가장 우려스러운 마지막 장

가장 위험한 것은 마지막 7부다. 필자는 '요즘 아이들 덩치는 커지고 체력은 약해졌다' 는 통념이 잘못됐다며 초중고등학교 체력검정 기준을 공박한다. 체력검사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체력적으로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덩치만 크고 힘을 못쓴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란다.

그 근거로 '절대 스트렝쓰 (외부저항운동능력)' 과 '상대 스트렝쓰(맨몸 운동능력)'를 들고 나왔다. '체구가 커진 만큼 절대 스트렝스는 증가 했으나 상대 스트렝스 발달은 더딜 수 있는데 작금의 체력검정 방식은 죄다 상대 스트렝스 중심이다. 따라서 평가 방식이 배근력, 악력 같은 근력 측정 방식으로 바뀌면 요즘 아이들은 체구도 커지고 체력도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것이다. 아이들이 비만해지고 힘도 약해졌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이에대해 기린과 쥐, 이종범과 최홍만 같은 나름 대중친화적 비유까지 동원해가면서 비만에 따른 수행능력 감소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야 말로 '유학파' 에 '운동처방 전문가' 로 활동하다 '4년제 대학 체육학과 교수' 로 재직중이라는 필자의 실력을 의심하게 하는 지점이다. 좌전굴 측정에 대해서 '팔다리가 긴 사람이 유리하다' 라며  '체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일정 수준까지 훈련에 의해 지배되는 게 아니다.' (215p) 라는 주장은 몹시 심각한 오류다. 무지에 의한 오류다. 다리짧고 팔이 길면 좌전굴이 20Cm 나오는게 아니다. 좌전굴은 햄스트링을 포함한 몸의 포스테리어 체인의 균형적 발달을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서 측정된 모빌리티는 다른 스포츠 수행능력의 잠재력, 부상방지와 직결된다. 요가, 강제적 스트레칭, 마사지등을 동원해서 이를 개선하려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애초에 여러분은 팔이 짧아서 그런 겁니다. 개선 불가능' 이라고 말해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게다.


체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매우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의 말대로  절대근력이 상승했다고 한들 무조건 체력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체력은 모빌리티, 지구력, 심폐능력, 균형감각, 절대근력등을 말하는 종합적 지표다. 따라서 현재 측정 도구도 달리기, 제자리 멀리뛰기, 턱걸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으로 다분화 되어 있다. 필자의 주장처럼 '절대 근력' 을 측정해 넣는다해도 악력, 배근력등 체력의 일부를 구성하는 두가지 지표만 상승했을 뿐, 종합적인 체력 상승이라고 결론짓기엔 빈약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저 대세에 저항해 한번 튀어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감한 책이다. '기존의 연구에 문제가(그것도 사소한) 있다. 그러니까 비만 공포증은 거짓말이지' 라고 우기는 인상이 강하다. 국내 현실에 아무런 의미부여를 할 수 없는 미국 논문의 짜깁기, 부실한 논거, 잘못된 운동처방을 늘어놓은 뒤 지나 콜라타의 리씽킹 씬의 결말부를 차용한 냄새가 다분히 나는 현학적인 문장으로 마무리 짓는다.'아, 비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통통한 인류로 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참담하다. 


이 책은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목록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저자의 사회적 지위와 관이 부여한 권위를 쉽게 믿는 문외한들에게 '양서'로 보일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은 사람들이 '아하!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적 몸담론으로 부터 자유로워 진 것 같아요!' 라며 정신적 자위행위를 반복한다면, 참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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