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고종석의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살기"는 굉장히 슬픈 책이다. 참여정부 끝머리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MB정부 마무리 즈음에 다시 읽어도 그렇다. 아니 그래서 슬픔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불혹을 한참 넘긴 나이에 나는 무엇인가에 홀려있었다."로 시작되는 머릿말을 읽다가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고종석의 글을 읽어왔던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차렸겠지만 그가 나이 40을 넘겨서 홀렸던 그것은, 좁게는 대통령 노무현이었고 크게는 그 주변에서 참여정부를 구성한 486중심의 민주화 운동 세력을 뜻한다. 16대 대선 전까지 [좋아하는 정치인은 노무현과 추미애]라는 자기소개를 책 날개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고종석이 이 문장을 게워내면서 달랬을 아픔을 나는 알 것 같다.

 

그 날이 기억난다. 노무현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소용돌이를 뚫고 대통령 당선자가 됐다. 호남에서는 영남사람인 그에게 기적에 가까운 지지율로 응원을 보냈다. 민노당 지지자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자신들의 후보에게 보내려던 표를 잠시 양보했다. 재벌들에게서 사과박스로 떼어온 선거자금 대신 동전으로 가득찬 돼지저금통이 쌓여갔다. 그렇게 해방이 후 늘 밀리고 핍박받아왔던 '정치적 소수자' 들의 선택을 받은 그는 "민주주의의 적자이자 구시대의 고리를 끊어줄 희망의 증거"가 된 듯했다. 그래서 정말 그 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뭔가가 이루어진것 같은 환상속에서 황홀해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이 된 것이라는 불길한 말이 점차 현실이 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새시대의 맏형이 아닌 구시대의 막내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우던 아스팔트위의 변호사는 대통령이되자 공무원 노조 설립을 저지했다. 여전히 노동현장에선 크레인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나왔고 FTA와 이라크 파병이 척척 진행되고 있엇다. 훗날 삼성을 생각하다를 통해 밝혀진 참여정부와 삼성사이의 밀월관계가 시작된 것도 이즈음 이었다. 지지자들이 소망을 담아 마련해준 소중한 시간을 참여정부는 고종석이 '신성동맹'이라고 표현한 "자본을 매개로 한, 반동 정치세력과 반동 언론권력 사이의 강고한 동맹"의 눈에 들기위한 아양과 교태로 허비했다. "지역갈등과 계층간 불화 종식"이라는 미명아래 말이다. 그리고 남은건 여전히 그를 왕좌에 오른 무지렁이 정도로 얕잡아보는 신성동맹의 싸늘한 눈초리와 그에게서 실망을 넘어서 절망한 지지자들의 분노였다. 

 

노무현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면서 임기내내 "건강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으로 노무현을 조목조목 비판해온 고종석의 올곧음이 돋보이는 책이다. 내가 변한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변한것이라는 말이 진실성을 담고 있을때는 바로 고종석의 입에서 나왔을때 정도이리라. 하지만 더욱 참담한 것은, 바로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굳이 이 자리를 빌려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5년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느꼈던 것은 허탈함과 실망 그리고 슬픔정도 였다. 지금은 다시 읽고 나면 어떤 기분이들까? 신성동맹은 여전히 강고하며 흔들리지 않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들 발 아래에 무릎꿇게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신성동맹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늘 우리 주변에 있어왔고 고종석 같은 이가 염려해왔던 일들이다. 시계가 점차 거꾸로 돌고 있다. 노무현 시대의 어둠을 기록한 책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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