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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시 - 그리스 로마의 신앙법제도에 대한 연구 ㅣ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479
퓌스텔 드 쿨랑주 지음, 김응종 옮김 / 아카넷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고 싶은 역사학도로서 『고대도시』라는 책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선사한 책이다. 특히나 기독교를 믿는 신자로서 마치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의 구약성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퓌스텔 드 쿨랑주는 유럽-인도어족의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종교와 국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꼭 그리스나 로마의 예를 들지 않고라도 구약의 유대인들의 삶을 꼭 빼닮고 있었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는 가족종교에서 그것이 자연종교로 넘어가 다신교로 발전하였다는 것이 한결같이 유일신 사상만을 유지하였던 유대교와의 차이이겠지만 종족만의 배타성이나 제사의식, 관념 등과 같은 부분에서는 꼭 유대교를 빼닮았다. 마지막에 기독교의 승리가 고대사회의 종말과 변혁을 완료시켰다는 점을 들은 것을 보고 만약에 나라면 중간중간에 유대인의 종교와 의식과 삶을 첨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갔다.
나는 무엇보다도 종교든 국가든 그 밑바탕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종교도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죽음은 사람을 생각하게 했고 그것이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이 두 번째 삶도 있으리라고 믿도록 지성을 향상시켰다. 그런데 당시의 지성은 인간이 자신의 두 번째 삶을 사는 곳은 다른 세상이 아닌 바로 이 세상이었다. 영혼은 그의 유해에 붙어있으므로 무덤이 없는 영혼은 집이 없으므로 악령이 되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무덤이 있는 영혼은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자신의 가족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본문에서 ‘고대도시의 법은 중죄인들에게 묘지박탈이라는 벌을 내렸는데, 그것은 가혹하다고 여겨졌다’ 라는 부분을 통해서 나는 동양 역사속에서 보았던 ‘부관참시’라는 형벌에 대해서 다시한번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오늘날의 사유관념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육체는 썩어질 흙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사유에서는 영혼은 유골과 함께 거하여 있기 때문에 결국 부관참시는 죽어서의 안식까지도 앗아버리는 영원한 형벌을 내린 무시무시한 처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회를 이해할 때에 무엇보다도 당시의 사유정신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죽음은 인간을 사유하게 하였다. 당시 영혼과 육체의 분리와 윤회까지는 생각지 못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숭배하게 되었다. 무덤은 신전이었고 가족은 집 옆에 신전과 신성한 불을 모시며 사는 사제들이었다. 이미 시작부터 가족은 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식사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행동으로서 신이 주재하신다’ 라는 부분에서는 교회의 성찬식이 생각났다. 떡과 포도주를 먹으면서 신의 뜻을 기념하는 의식을 치루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또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말처럼 어느 종교에서든 의식을 치루고 나서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그것은 명절 때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 사람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제사를 지낼 때도 조상신이 와서 드시고 가신다는 우리의 제삿날과 신성한 불과 조상신이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고대인들은 꼭 빼닮았다. 동양의 고전에서도 식(食)이 곧 천(天)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건, 불교를 믿는 사람이건 유교를 믿는 사람이건 간에 각자의 사유체계는 다르지만 큰 부분은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것은 국경과 종족과 인종을 넘어서는 정신의 크나큰 일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인도어족의 역사와 의식을 통해서 동시에 나는 한국과 동양의 의식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장자상속이다. 초기 종교의 신은 인류의 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원초적인 종교에서 각각의 신은 가족에 의해서만 숭배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제물을 받지 못하므로 영원히 배고프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으로 왜 오랜 역사속에서 남자, 그것도 장자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크나큰 지위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 열쇠를 찾게 되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조상들은 수호신이 되고 한 집안의 사람들과 조상들은 이익을 주고받는 존재들이다. 현세의 사람들이 제공해 주는 음식으로 그들은 죽어서도 배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 자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남기게 되었고 그 댓가로 현세의 사람들에게 수호신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신이 현세의 사람들에게 행복과 행운을 주지 못한다면 신성한 불은 꺼졌다. 오늘날에도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믿는 신을 비난하는 자들이 많다. 오늘이나 그때 그 사람들이나 결국은 동일하다.
한편 ‘산 사람은 죽은사람 없이 살 수 없었고, 죽은 사람도 산 사람 없이 죽어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라는 부분을 통해서 이것이 꼭 연옥의 개념에서 본 것과 같은 사유라 느꼈다. 자손들이 연옥에 있는 조상을 위해 기도하면 조상이 천국에 가게 된다는 생각 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명제로 따르는 죽음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죽은 뒤에 삶은 그가 어떤 자손을 남기는가에 달려있다. 장자에게는 조상신을 수호할 의무가 지워졌고 그에 따르는 권리들이 주어졌다. 가족의 대를 유지시키고 조상신을 보존하기 위한 재산도 그의 몫이 되었다. 이 같은 구성원리를 그들은 동의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들이 죽는다면 아들을 통해서만 자신들이 죽어서의 삶이 영속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가장이 곧 제사장이었고 힘이 집중되었다.
마치 한 나라의 왕이 아버지이고 백성은 자식들인 것처럼 그것은 가족의 모습과 꼭 닮았다. 한나라 때 유교를 통치질서로 삼았던 것이 스쳐지나갔다. 가족질서가 잘 지켜지면 지켜질수록 왕의 권위는 유지되고 지속력이 있었다. 그런데 자칫 한나라의 경우처럼 국가가 먼저이고 통치를 위해 유교의 장려라는 가족질서의 틀이 유지된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세상은 가족질서의 바탕 아래서 국가가 세워졌고 국가라는 것이 가족의 확장의 필요선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생각의 범위가 가족을 벗어나 종족과 부족, 도시와 국가 그리고 인류로 변화되어 가는 사고의 확장에 따른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인간의 신에 대한 관념의 변화이다. 자기 가족들만을 수호하는 신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신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조상신이 아니라 자연으로 신이 이전되고 나중에는 세상의 창조와 질서를 유지시키는 전지전능한 신으로 확장되어진다. 자기 가족들만 생각하는 인간의 편협성이 전 인류애로 확장되어 간다. 이 모든 원동력이 종교이자 곧 신이다. 오늘날 기독교도는 제외하더라도 불교신자이든 천주교 신자이든 전 우주질서의 통치자를 신앙의 대상으로 두고 있지만 동시에 조상신에게도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곧 내가 존재하는 바탕이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생명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즉 가족종교의 유지원동력은 생식으로서 이를 통하여 피를 물려 잇게 하신 조상에게 감사하게 된다.
따라서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여성이 왜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존재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가족종교의 유지는 생식으로 이루어지고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딸은 가족종교를 유지시킬 존재가 아니라 시집을 가버려 다른 조상신을 섬기게 된다. 따라서 딸은 조상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아들이 많을수록 그 조상은 대가 끊기지 않고 제사를 유지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딸이 재산도 물려받지 못하고 천시받는다고 냉혹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가족의 질서의 유지가 사랑과 정과 혈육이 아니라 가족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니까. 그래서 남자라 하더라도 그가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상속을 받을 수 없었다. 비록 남의 자식인 양자를 들이더라도 그가 가족종교의 의무를 지게 된다면 그는 아들이 된다. 생식보다도 혈육적인 끈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조상숭배라는 종교적인 의무를 다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사실을 보면서 우리 역사속에서 등장하는 양자들에 대한 수수께끼 하나가 또 풀어졌다. 고대 가족의 구성원들을 결합시킨 것은 출생이나 감정이나 육체적인 힘보다 더 강한 그 무엇이었고 그것은 신성한 불과 조상들의 종교였다. 즉 가족이란 동일한 불에게 기도를 드리고 동일한 조상들에게 제사 음식을 올리는 것을 종교적으로 허락 받은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결혼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여성은 가족종교를 잇지 못하고 다른 조상들을 섬겨야 하는 존재이다. 그녀는 새로운 종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첫 번째 종교와의 모든 관계와 인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의식은 매우 특별하다. 신부가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괴하듯이 안아 올려야하며 여자는 고함을 쳐야했다. 나는 이것이 그녀의 친정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퓌스텔 드 쿨랑주도 남편의 조상신을 마주하는 것이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남편 될 사람의 집과 신의 주인의 힘에 끌려 들어왔음을 나타낸 것이 아니였을까 하는데에도 공감을 하게 된다.
성경의 곳곳에도 결혼의 신성성이나 의미를 강조하여 비유해놓은 표현들이 많이 있다. 고대에도 결혼에 대한 여러 정의들이 있는데 <혼인은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의 결합이다>,<아내는 성사(聖事)와 인간사의 동반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여자가 남편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라고 표현하였다.
결혼은 생식을 통한 종족의 유지와 대를 잇는 세상에서도 매우 축복받고 성스러운 의식이다. 이 성스러운 의식은 성경에서도 표현되는데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님이 신랑이고 성도들은 신부가 되어 신랑이 다시 오시길 기다리는 열처녀로 비유하고 있다. 남녀를 떠나서 모든 인류가 처녀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로 살펴볼 것은 독신과 불임이다. 가족종교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를 이어 종족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한 영생은 바로 아들에게 달려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 데에 큰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대가 끊기는 것은 불효 중의 최악의 불효다. 혈육적인 연(緣)보다도 종교적인 숭배를 함께 참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므로 조상신 숭배를 하지 않는 친자보다 숭배의식을 함께 하는 양자가 우대되는 것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독신은 커다란 불경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세의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조상들에게까지도 일종의 저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을 낳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였고 가족종교를 계속해 나갈 아들은 종교적인 결실이어야 했다. 혈연의 끈이 아니라 결혼의식을 통하지 않은 아들은 숭배의식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사생아는 유산을 받을 권리가 없었다. 왜 한국의 역사에서도 첩의 자식은 천시를 받았는지에 대한 원리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독신은 현세에서나 내세의 조상에 대해서나 불효였기 때문에 결혼은 반드시 의무였다. 오늘날처럼 그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기 바라는 두 존재의 결합이 아니었다. ‘종교와 법의 견지에서 볼때, 결혼의 효과는 두 존재를 동일한 가족 종교 속에 결합시킴으로써 조상숭배를 계속해 나아가기에 적합한 제3의 존재를 낳는데 있었다.’ 따라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이혼하게 되었다. 본문에서도 카르빌리우스루가라는 사람이 그녀를 너무나 극진히 사랑했지만 결국은 종교에 따라 사랑을 희생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칠거지악이라고 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면 출가외인인 여자가 내쫓김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고대도시라는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우리 역사와 세상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죽음으로부터 시작한 가족종교 즉 조상숭배가 모든 사법(ex 결혼과 이혼, 상속권 등)과 제도에 무수히 많은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고대도시에서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도시의 법을 성문화한 것이다. 법은 사람들이 구할 필요료 나온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왔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사람들은 당시에 법이 신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진정한 입법가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종교 신앙이었다. 그래서 법에 복종하는 것은 곧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되었고 논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것이었다.
퓌스텔은 가족-종교-사유재산의 불가결한 관계를 좀 더 넓은 혈연 단위에 적용하여 도시국가의 성립을 설명하였다. 원래 가족종교의 배타성은 두 가족이 서로 섞이는 것을 금하였지만 인간의 종교적 관념이 확대됨으로써 각자의 종교성을 희생시키지 않은 채 공통적인 또 다른 숭배를 위해 결합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퓌스텔은 사회조직의 확대는 신앙의 확대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보는 것이다. 자연신의 확대가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형제단을 형성하고, 또 부족을 이루고, 여러 부족이 모여 도시국가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 아테네를 매우 민주적인 사회였다고 오해였음을 알려준다. 그들의 추첨은 유능하고 용감한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라 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일종의 점복과 같은 행위였기 때문이다. 결국 왕은 사제이고 도시는 공동체의 신들이 계시는 성소였다. 즉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으며 두 개의 권위를 함께 지닌 초기의 도시국가는 강력한 존재였다.
한편 고대도시 역시 모든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계층과 불평등의 측면을 보여준다. 그리스와 로마뿐만 아니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구분은 더욱 철저해지고 계층들은 더욱 더 뚜렷해지는데 그러므로 퓌스텔은 불평등은 서서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을, 사회의 탄생과 동시에 존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에도 가족은 이미 내부적으로 계급 구분을 내포하고 있었고 초기의 도시는 가장들의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청동기 시대의 무기의 발전과 그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다소(多少)에 따라 그리고 정복전쟁에 따라 계급이 분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태초부터 한 가족, 한 종족 내부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평민 귀족들이 승리한 후에 그리스 로마 도시국가들의 통치원리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공공이 이익이었다. 어쨌든 퓌스텔은 로마의 정복이 일련의 혁명에 의해 미약해지고 있던 도시국가들의 체제의 파괴를 마무리하고 잔재를 일소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고대사회의 진정한 종말을 나타낸 것은 기독교의 승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특정가족이나 특정 도시만의 배타성을 가진 민족의 종교가 아니라 전 인류의 종교로서 보편성과 유일성을 나타내는 고등종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포교정신은 가족종교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벗어나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지배하는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종교를 정치적으로 분리했다. 즉 인간은 자기의 육체와 자기의 물질적 이익에 의해서만 사회에 구속되고, 자기의 영혼과 관계된 문제에서는 자유로우며 오직 신에게 속박된다고 가르쳤다.
법의 성격도 변화하였는데 기독교는 법이 종교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 않은 최초의 종교이다. 즉 기독교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의무에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는 성직자로서의 지위에 수반되었던 절대적인 권위를 상실한 채, 자연이 자식들의 필요를 위해 부여해준 권위만을 간직했다. 아내는 이제는 도덕적으로 남편과 동등하게 되었다.
유대교만이 가지고 있던 배타성이 예수가 오고나서 전 인류의 종교로 전파하게 되었다. 이제는 신약성경에 나온 것처럼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장자와 남자중심이 아니라 이제는 이방인이나 여자나 노예도 구원받을 대상이 되었다. 참고로 이방인과 여자 노예는 그리스 폴리스에서도 시민이 아니었다.
로마에서 가족종교가 없어 이방인으로 간주되어졌던 평민들이 기원전 6세기 경부터 화폐가 유통되고 상업과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퓌스텔이 <평민귀족들>이라고 부른 부유한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이 등장하고, 종래 기병 위주의 전술이 중무장보병의 전술로 바뀜에 따라 평민들은 지도자들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군사적 역할이 중요해진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평민귀족들은 승리하게 되었다. 평민들이 경제력이 향상되지 않았다면 이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여성의 위치가 성장하게 되었던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동인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성도 노동을 하게 되고 경제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고대도시에서도 사람의 관념이 변화하여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 구절이 인상에 남는다.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인간의 평등이 확산되고 여성도 구원받을 존재로서 인식이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그 정신적인 기반을 이룬 기독교의 존재,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종교적 이해에 대한 선행은 매우 중요한 사실임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김응종 교수님의 <번역을 마치고>에서 인상깊은 부분이 있다. ‘현대 역사학의 물질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이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 이 같은 퓌스텔의 인간주의는 새로운 가치를 띠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역사학은 물질적 사실이나 제도만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연구 대상은 인간의 정신이다. 역사학은 삶의 각 상이한 단계에서 인간이 믿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 역사는 인간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