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고 초라한 -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에 대하여
강미현 지음 / 흠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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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존엄하고 초라한>을 읽으며 나는 사람만이 아니라 공간 역시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건물과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위치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떤 이는 그 안에서 작아지고 어떤 이는 그 안에서 겨우 숨을 쉰다 공간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인물들이 머무는 건물은 차갑고 닫힌 분위기를 품고 있다 높은 벽과 좁은 복도 빛이 충분히 스며들지 않는 방은 그곳에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수축시키는 듯하다 그 공간 안에서는 말도 조심스러워지고 걸음도 자연스레 작아진다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낯선 관공서나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괜히 위축되고 목소리가 작아지던 순간들 공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미 나를 판단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경험과 겹쳐졌다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같은 공간이 마지막으로 붙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비록 낡고 초라해 보이더라도 그 안에 쌓여온 시간과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은 그 사람의 흔적을 품고 있고 그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공간을 떠난다는 일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집이라는 공간을 떠올렸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나의 시간이 스며 있는 곳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공간은 결국 기억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공간은 배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문턱 하나 출입문 하나가 사람을 안과 밖으로 나눈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머물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한다 그 경계는 눈에 보이는 구조이지만 동시에 사회가 만든 보이지 않는 선이기도 하다 나는 화려한 로비와 유리문이 있는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느꼈던 긴장감을 떠올렸다 내가 과연 이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는 순간들 공간은 그렇게 사람의 자존감을 건드린다

그러나 작가는 공간의 억압적인 힘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주 작은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처럼 미세한 온기와 가능성도 함께 그려낸다 완전히 닫힌 듯 보이는 공간 안에서도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작은 위로를 건넨다 결국 공간의 공기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벽 안에서도 한 사람의 말과 시선이 분위기를 달라지게 한다

<존엄하고 초라한>을 통해 나는 건물과 공간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감정을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공간은 우리를 작게 만들기도 하고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초라해지고 어떤 곳에서는 비로소 존엄해진다 우리는 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니 내가 머무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이곳이 나를 위축시키는지 아니면 숨 쉬게 하는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주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이 공간이 주는 힘일지라도...

@heumyeong.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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