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실어증 환자>는 말을 잃은 개인의 병리적 상태를 다루는 이야기이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자체가 어떤 종류의 실어증에 걸려 있는지를 묻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실어증과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의미 없이 말은 잘하는 실어증 이 두 가지 유형의 실어증은 더 이상 병원의 진단명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언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고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정작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가족 안에서도 공동체 안에서도 말은 넘쳐나는데 의미는 사라져 있다 그 모습은 소통의 부재 속에서 인간이 점점 파편화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과 닮아 있다 특히 초현실 탈진실의 시대라는 표현이 떠오를 만큼 진실과 거짓 감정과 계산이 뒤섞인 세계에서 인물들이 겪는 혼란은 낯설지 않았다이 소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실어증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장애로만 한정하지 않고 역사와 사회 언어와 권력의 문제로 확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 엘에이로 이민을 떠난 두 가족의 디아스포라 서사는 한국 현대사의 격변과 미국 이민 사회의 현실을 동시에 비춘다 한국에서 겪은 폭력과 침묵 미국에서 마주한 차별과 생존의 언어 이 모든 것이 마치 되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게 얽혀 있다특히 인물들이 과거의 사건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말하는 장면들이 오래 남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구는 침묵하고 누구는 과장하며 누구는 끝내 말하지 못한다 그 차이는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의 차이처럼 보였다 말을 잃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아무 의미 없이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해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언어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어떤 인물은 좌절하고 분노하며 어떤 인물은 성장하고 화해한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말하지 못한 것들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놓여 있다 만약 모순이 가려진 진실이 소통하고 싶어 드러낸 얼굴이라면 우리는 그 얼굴을 얼마나 정직하게 마주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은 인물들이 모순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모순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실어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말하고 너무 빠르게 판단하며 너무 쉽게 편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이해보다는 소음만 남는다<실어증 환자>는 한 개인의 회복 서사가 아니라 한 시대에 대한 기록이자 증언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해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실어증을 앓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서로의 말을 이해하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해하지 않은 채 말만 쏟아내고 있는가책을 덮은 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이해하는 것보다 멈춰 서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느끼게 되었다 실어증 환자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소설이다 읽고 나면 세상의 언어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그 낯설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midasbooks#실어증환자 #계영수작가 #미다스북스출판사 #장편소설 #서평 서평단 리뷰단 협찬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