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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경원 옮김 /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선물을 받을 때 몇자 적은 카드만 받아도 선물을 풀러보기 전 훨씬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요즘은 몇 줄의 글을 손으로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컴퓨터 아니면 핸드폰 SNS의 빠른 속도와 다양한 이모티콘으로 손글씨를 대체한지 오래되었다.
아마 이 글을 쓴 저자가 1949년 생이니까 지금 세대의 스마트 기기화된 문화의 메마름을 더 깊이 느꼈으리라. 책을 읽은 나 역시 스마트 기기보다는 분명 손글씨 세대임이 분명한데....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세대인데 그런 것들이 까마득히 느껴지는 걸 보면 기기문명이란 건 인간을, 사회를 속속들이 바꾸어 놓는 것 같다.
저자가 과거 업무 과정에서 느꼈던 프로젝트, 이익, 계획, 약속어음, 진척 또는 전진, 승진...등의 단어 앞에 모두 pro-라는 접두사가 붙는다는 걸 읽으면서 나 역시 새삼 놀라웠다. 기업은 결국 사람을 부속으로 대한다는 말이 맞는가 싶고... 우연인지 고도의 계획인지 어쩌면 단어마저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까?
그런데 이런 pro-의 의미는 비단 기업에서 뿐이겠는가.
상술의 광고가 우리의 눈과 정신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그 의미는 여러 이미지를 덧힙혀져 우리를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잉여의 수단으로 만들었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가 없다.
기다린다는 것은 여러 상황 속에 다를 수 있지만 요즘 내 상황 속에서의 기다림이란 낭만적으로 기대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단어이다. 조급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암담하고....책 속에서 말하는 기다림을 가지려면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자꾸 그럴만한 여유가 내겐 없어라는 대답을 속으로 하게 된다.
그런 내게 눈에 딱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바로.... [ 좋지 않은 정도가 아직 미지근하다 ]라는 말이다.
이 얼마나 근사한가. 아직 미지근하다니.... 정말 저자의 말처럼 실감나는 말 아닌가...
저자는 기다림의 단어에 여러 삶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 쓴 차 한 잔을 오래 마시는 것처럼 풀고 있다. 늘 딱 떨어지는...생각을 더 멀리까지 나가게 하지 않는 책 위주로 읽었던 나를 반성하게 했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다림이었다. 아주 조용한 숲길을 철학자와 함께 걸으며 멋진 풍경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데 인생 선배의 조용한 이야기들이 애정어린 말로 나를 향한다. 기다리면서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은 익숙해지고 어느새 내게 향하는 이야기들은 풍경과 어우러진다.
지금 내가 멈추어졌다고 생각되는 이 시간이 내게 좋지 않은 정도가 아직 미지근한 것 같다. 그래서 더 식어지든지 뜨거워지든지 나는 멈출 수가 없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눈앞의 상대를 잠시 바꾸어도 보고, 거리를 두고 나를 바꾸어도 보고...기다리면 여러 가지 길이 또 보이겠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