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월딩 : 아마존에서 배우는 세계 허물기 이동시 총서 2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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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근황이 궁금해지는 작가들이 있다. 주류(?) 담론과 정상성에 매몰된 사회의 중심에 날선 질문을 던지는 작가들. 우정을 나눴던 친구가 불쑥 생각나는 것처럼, 이 작가들의 신간 소식과 안부가 가끔 궁금해진다. 김한민 작가도 그 중 한명이다.


그가 신간을 냈다. <언월딩>. 반갑다. “나의 이타카는 아마존이다” 이렇게 서문이 열린다. 김한민 작가하면 이베리아 반도와 페소아가 먼저 떠오르는데, 아마존이라니.


환상을 갖고 출발했으나 환상이 깨진 곳에서 이타카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작가는 쓴다. 아마존에 가졌던 작가의 환상과 그것의 깨짐을 쓴 문장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아마존에 대한 상들이 겹쳐졌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착취라는 단편적인 이미지, 남미작가들의 문학을 통해 남겨진 이미지. 그야말로 후 불면 흔적도 없이 날아갈 껍데기들뿐인 이미지와 환상. 나는 아마존을 모른다.


“아마존은 개인은 물론 인간이 구하고 말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너무 공감한다. 아마존을 넘어 지구 자체로 확대해도 너무 맞는 말이다. 한낱 인간이 지구를? 지구 입장에서 인간은 제일 골치 아픈 생물 종으로 전락했다. 그런 의미에서 언월딩이라는 책 타이틀이 함의하는 바가 더욱 궁금해진다.


“이타카가 널 부자로 만들어주길 기대도 안했는데

길 위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 이미 풍요로웠으니.”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 <이타카> 중, 작가인용.


작가는 “아마존에 대한 환상뿐만 아니라 반환상에도 분투한 결과물”이라고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의 여정이 “함께 떠나는 길”이길 바란다고 쓴다. 집 앞 뒤에서 이상 기후의 열기를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우렁찬 매미 소리를 들으며, 이타카로 떠나는 배에 나도 슬며시 승선한다.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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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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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잎사귀를 품은 숲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향기로운 나무들 사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꿈을 꾸기 위해.

<숲에서, 145면>


이 시를 나는 이렇게 고쳐 써 본다.

무수한 잎사귀를 품은 이 책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향기로운 문장들 사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꿈을 꾸기 위해.


발저 시의 한 연을 읽었을 뿐인데 청량한 산들바람이 몸 안팎을 휘감고 지나간다. 발저의 마법이 지나간 것이다. 우리 내면의 명랑하고 맑은 샘물. 발저의 소박한 문장은 그 샘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마법의 바람이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 샘물은 돌연 밖으로 찰랑대며 흘러넘친다. 아, 신선한 물의 정령! 숲의 정령이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 발저의 문장은 어김없이 그 정령들을 깨운다. 가장 작은 숨결로, 가장 작은 빛의 조각으로.



<전나무 가지,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 푸르고 작아서 아름다운 것들. 이 사랑스런 조합의 책 제목은 이 책에 수록된 짧은 산문의 타이틀이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글이 사람의 마음을 갑작스레 환하게 밝힐 수 있는지. 우듬지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 같은 글이다. ‘당신이 만약 지치고, 낙담하고, 슬프다면 이 편지를 읽어보시오’하고, 사려 깊은 발저가 깊은 숲속 키 큰 나무 옹이 사이에 꼭꼭 접어 넣어둔 편지 같다. 발저의 다정한 손길이 느껴지는 화사한 에세이이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발저의 그늘지고 울창한 숲으로 성큼 들어와 버렸다. 지글지글 끓는 폭염의 나날, 나는 발저와 함께 사계절 변화무쌍한 숲의 구석구석을 걸을 예정이다. “햇살이 노릇노릇” 걸려 있는 한 낮에도, “만물에 무언가 신성한 것”이 내려앉은 밤에도, “달콤하면서도 차가운” 새벽에도 숲 속을 걸을 것이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빛을 흩뿌려 반짝이게 하는 발저와의 숲 산책이라니.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지······”



“나는 형언할 수 없이 즐거운 영혼과 함께 아름답고 경건한 어둠 속을 계속 걸어갔다.” (74면)



이 아름다운 책에는 몇 점의 귀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발저의 형인 화가 카를 발저와 동시대 화가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그림들이다. 발저의 시선과 정신에 담긴 스위스와 독일의 숲과 호수, 산과 대기의 표정과 정서를 간직한 작품들이라 독서의 감흥과 여운을 더해 준다. 인상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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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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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유쾌한, 그러다 돌발적인 도약으로 한 방의 킥을 날리는 제프 다이어야말로 성찰과 유머라는 고난이도의 서커스로 세계를 돌파해가는 작가이다. 그것도 무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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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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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느끼는 작업이나 어떤 종류의 정리. 어느 나이 대를 지나며 가끔 혹은 자주 생각하게 되는 주제이다. 황혼을 향해 돌진하는 열차에 이제 막 올라탄 제프 다이어는 이 책의 마무리가 그 중 하나였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 인생의 한 시기에 내 주변에 모여 거친 별자리 모양을 이룬 경험들, 사물들, 문화적 산물들의 집적에 관한 것이다.”


한 작가의 삶을 통과하고, 그를 형성한 경험과 예술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작가가 직접 그것들을 썼다면 더욱. 작가 자신이 이전에 그가 “알던” 삶이 “끝나가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에 썼다면 더더욱.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체험되는 길 끝의 시간. 흘러간 시간에 별들 같이 박힌 그 경험들을 노년에 이른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 기록했다. 자극과 영감을 주었던 스포츠, 음악, 문학, 철학, 그림, 사진, 영화. 그리고 스포츠맨들과 예술가들. 이 모든 것들의 시간과 함께 작가의 시간도 함께 흘렀다. 시간은 경험의 빛과 파장을 변화시킨다. 이 책은 그 변화들에 대한 기록이다.


(흥미로운 글쓰기 작업이다. 노년에 이른 자신을 통과했던 사람들, 경험들, 예술 작품들을 정리해보기. 어쩌면 너무 방대해서 시작조차 어려운 일이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면 자신의 물살을 만들어 흘러가는 것이 글쓰기가 아니던가. 제프 다이어의 이 책은 그 작업의 방법과 의미에 대해 많은 영감을 준다. 일단 시작하기, 힘 빼기, 우회하기, 머물기, 보내주기, 맞이하기. 이 책이 보여주는 제프 다이어의 회고 방식은 자유분방하다.)


예술 작품과 그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절벽, 시간의 벼랑. 모든 변화들이 수렴되는 하나의 소실점. 제프 다이어의 기억과 문장도 그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한다. 예술가의 황혼과 자신의 황혼. 그리고 그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의 코로나 봉쇄가 상징하는 문명의 황혼. 이 책은 작가 개인과 천재라 불리는 예술가들과, 문명에 길게 드리워진 저묾의 징후들. 빛이 사위어 가는 그 석별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벼랑 끝에 매달린 이들 앞에 단 두개의 선택지처럼 보이는 버티기와 그만두기.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본 제프 다이어는 전한다. 퇴락과 일몰의 의미 그리고 버티기와 그만두기의 이유와 방법이 얼마나 다채로운 스펙트럼 안에 놓이는지를. 누군가에게는 이른 나이에 석양빛이 스미고, 누군가는 노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어떤 이는 쇠락을 부정하고, 어떤 이는 준비한다. 누군가는 그만두었다가 돌아오고, 누군가는 말년에 처음으로 ‘발견’된다. 가장 찬란하게 뒤늦게 도착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태어난다.” (니체, 작가 인용) 그 찬란함과 쇠잔함, 절망과 환희, 아이러니의 순간들이 이 책을 수놓고 있다.


쇠락과 노쇠에 접어든 삶을 사색하는 이 책은 무거운가? 그럴 리가. 60대란 나이를 분명하게 의식하지만 제프 다이어가 아닌가. 어떤 작가들은 늙지 않는다. 그렇게 보인다. 자신의 자신의 노화를 묘사하는 문장에서조차 푸릇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전작들이 새긴 감각의 청춘이 독자에게 너무 깊게 각인된 걸까. 왕성한 호기심, 집요한 관찰력, 작가로서의 성실함, 그리고 엄청난 기억력, 마치 평행 우주 속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동시도 살고 있는 듯한 기억력.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함과 열정. 그리고 유머, 유머. 이 모든 것을 숨길 수 없었던 이 책은 그러니 재미있다. 혼자 계속 “쿡”, “쿡”하며 읽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한 권 작가’의 두 번째 책이 갖는 목적은 자신이 여기까지라는 일종의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이다” 하필 그 예로 나오는 작가가 내가 친애하는 작가지만, 정말 후추 같은 유머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와 동행하는 예술가들이 여럿이지만 작가가 (가장)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는 니체다.(내 생각) 작가는 니체의 문장들을 여기저기 출몰시킨다. 그때마다 웃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모두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오직 나만이 니체를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안 웃을 수가!) 그렇다. 작가는 작가대로, 나는 나대로 이해한다고 착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니체. 웃기고, 슬프고, 반짝이고, 번뜩이는 니체. “가장 심오한 정신은 가장 경박한 정신이어야 한다.” (니체, 작가인용) 이렇게 경박하고 심오한 문장을 누가 또 쓸 수 있을까.


작가의 문장들과 화음을 이루는 또 한명의 작가를 소개하자면 필립 라킨. 작가는 필립 라킨의 유머를 언급하며, “유머 감각에는 웃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쓴다. 솔직하고, 엉뚱하고, 유쾌한, 그러다 돌발적인 도약으로 한 방의 킥을 날리는 제프 다이어야말로 유머라는 고난이도의 서커스로 세계를 돌파해가는 사람이다. 그것도 무심하게.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고 있는 다른 일이 적을수록 존재 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된다.” 얼마나 정확한 통찰인가? 버티기도 어렵지만, 그만두는 것도 어렵다. 버티기 위해 그만두고, 그만두기 위해 버티기도 한다. 존재의 품은 이래저래 많이 든다. 버티고,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는’ 각자의 내면의 삶을 타인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실은 포기 상태일 수도 있고, 생 자체를 버티기 위해 어떤 이는 무언가를, 혹은 모두를 놓아버린다.


제프 다이어가 언급했듯이 “더 큰 맥락 안에서 자신을 파악할 줄 아는” 내적 성찰은 모든 이들에게 할당된 재능이 아니다. 작가가 예를 든 마이크 타이슨처럼 버티기와 그만두기 자체보다 내적 성찰이 우선이다. 자기의 현재 실존 상태를 어디까지 통렬히 꿰뚫을 수 있을까. 버티든 그만두든 자기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행할 것 인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수없이 많지만, 우선 <버닝맨 페스티벌> 참여기와 니체와 베토벤의 연관성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다. 읽어들 보시라. 아름답고 톡 쏜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미약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으니”(셰익스피어,<폭풍우>중에서) “나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열려 있어.”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 미완의 천국>중에서). (이런 아름다운 인용이 계속 이어진다.) “음악은 그 자체의 중력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무중력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때 중력의 일부는 바로 이런 몸부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통찰이 책 여기저기에 반짝인다. 몸부림치지 말지어다. 그것이 너를 지상에 묶어둘지니. 어떤 비상을 위해선 버티기를 멈추고, 그만두어야 한다. 그 순간 삶도 음악이 되는 건가?


도어즈의 <끝The End>로 시작한 이 책은 수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경유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로 마무리 된다. 작가의 문장에 이런저런 이유로 설득당한 나는 음악을 찾아 듣기에 바빴다. 작가가 탐독한, 읽다가 던져버린, 나중에 다시 집어든 문학 작품들 또한 정말 방대해서 그 중 일부를 찾는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많은 음악과 책이 등장한다. 제프 다이어의 박학과 다식에, 예민한 감성과 촘촘한 사유에 놀라게 된다. 그는 음악도 책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경험해서 좋았고, 억울했던 그의 지극히 사적인 예술사가 펼쳐진다. 이 또한 이 책이 안겨주는 즐거움이다.


“나는 큰 목표나 야망, 꿈같은 것을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아주 많은 자잘한 계획, 잔꾀, 취미, 관심사들로 늘 분주했기 때문에 더 원대한 목적이 없다며 아쉬워하거나 더 고상한 위안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이 문장의 진위를 확인시켜 준다. 이 책도 여전한 관심사로 분주하다. 제프 다이어의 여전한 청춘의 비밀은 이 분주함일지도 모르겠다.


제프 다이어의 이 책과 그의 문장은 잘 구워진 크래커 같다. 적당한 소금과 밀가루가 잘 배합된 바삭한 크래커. 짭조름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크래커. 그래서 손이 계속 가는 크래커. 제프 다이어는 천재들의 삶과 황혼을 통해 ‘삶’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이야기한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그것. 땀과 휴식, 눈물과 웃음, 고통과 환희, 승리와 좌절, 권태와 유희, 회한과 안식으로 반죽된 그것.


작가는 니체가 농담과 성찰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고 적는다. 싱거운 유머 속에 페이소스가 짙게 깔린 이 책도 역시 농담과 성찰로 분주하다. 이 책은 필멸하는 인간의 공평한 운명에 대한 오마주이다. (너무 깊게 알아버려 외롭고 불행했던 니체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혔다.) 최후의 승자는 모든 것을 지극히 무관심하게 관장하는 무심한 시간이다. “가장 무거운 무게”(니체, 작가 인용)를 지닌 “끝을 맞이하는 상황”,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그의 화법이 좋다.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서 좋다. 짭조름해서 좋다.


P.S.) 니체가 틀림없이 반했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 제프 다이어가 장담한 작가, “에스키모가 눈을 알 듯” 남부 캘리포니아의 바람을 아는 그 작가의 책이 국내에 어서 번역되기를 바란다.


#예술#예술가#에세이#제프다이어#라스트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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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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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28일 10시에 그가 특검에 출석했다. 나는 어쩌자고 TV 생중계로 그 모습을 보려했을까. 특검 출석시간, 출석방식을 두고 실랑이를 벌여 어김없이 쓴물을 올라오게 한 인사가 아닌가. 나중에 뉴스를 봐도 될 것을 왜 주말 오전 그 낯짝을 보겠다고 리모컨을 눌렀나. 불법 계엄령 이후 나는 집요하게 생중계되는 현장들을 쫓는다. 밤을 새우고, 예정된 시간들을 기억한다. 마치 그 현장들을 내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쫓는 것은 무엇일까.


차에서 내린 그는 사적인 용무를 처리하려고 관공서에 들른 민원인처럼 굳은 얼굴로 검찰청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한 국가를 대표하던 공인의 모습은 없다. 성가신 사적 용무를 앞둔 사인이 취재진들 사이로 무심히 사라졌다.


어쩌면 불법계엄령도, 탄핵심판도, 내란재판도, 내란수사도 그에게는 정말 지극히 사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 그 냉담하고 희멀건 얼굴을 본 순간, 이런 생각을 처음 했다. 국가를 내 손아귀에 넣겠다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네. 그의 사고는 여기서 멈춰있는 것 같다. 검찰 총장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가 그러고 싶은데, ‘내’ 마음처럼 안 되네. 왜 오라가라하고, 왜들 이렇게 시끄럽게 굴지. 내 개인적인 일에 왜들 저렇게 난리야. 그와 그 배우자는 정말 줄곧 이렇게 생각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는다. 명치 부분이 묵직하다. 오늘 아침 본 그의 얼굴과 이 책이 복기시키는 무수한 날들이 겹쳐진다. 담금질을 당하는 것 같았던 밤과 낮이 그 말끔한 외관과 냉담한 표정에 어른거린다. 뭉근한 울화가 차오른다. 그는 이런 마음들을 모른다. 모르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들의 법과 우리가 아는 법 사이의 괴리를 다스리려고, 황정은 작가는 책상 근처에 고사리 화분을 잔뜩 가져다두었다고 한다. 나는 작가의 일기를 읽는다. 나를 통과하는 이 모난 감정들의 연원을 거슬러 오른다. 그 날도, 이 일기를 읽는 지금도 혼자가 아니라고, 작가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초법적 존재들, 초법적 운명 공동체들.. (중략)..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 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되는, 되니까 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는 따로 있다."

작은 일기, 112-113면, 황정은

2.

 

세면대 밸브에서 물 새는 걸 발견했다. (중략) 오후 열시 삼십사분 계엄

 

작은 일기, 8-9, 황정은

 

그 날의 작가의 일기를 읽으며 같은 날 내 일기를 찾아봤다. 123일 두 줄, 124일 한 줄.

한 것, 본 것이 일기에 쓰는 전부인데 그마저도 없다. 공중파 TV를 통해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처음부터 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보게 됐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보는 내내 황망함과 더불어 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일어날 변화들이 한 단계씩 높아지는 음계처럼 신호음을 높여가며 주마등으로 지나갔다.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A, B, C, D로 증폭되어 머릿속으로 퍼져갔다. 그것은 이미 체감되는 공포였다.

 

3.

 

이 책을 처음 받아 탁자 위에 놓을 때, 책의 낱장들이 펄럭인 짧은 순간 스친 페이지에 이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해왔던 생각. 나는 손상 됐고, 그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 하지만 그걸 느낌과 동시에, 그걸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 부끄러웠다.

 

손상이라는 단어는 손상 되지 않은 상태를 전제하는데, ‘손상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볼수록 생각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인간은 태생부터 손상된 존재.... 손상은 존재의 양식. 이어지고 이어지다, 돌연 멈추게 된다.

 

2009, 2014, 2022. 특정한 방식으로 다르게 손상됐다고 느끼기 시작된 것은 저 해들과 관련 있다.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변해간다. 손상시키고, 손상된다. 손상된 기억만을 간직하려는 관성이 나의 악이다.

 

저 해들에 일어난 사건들이 나를 손상시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역사에는 얼마나 경악할 말한 참극이 많았나. 하지만 지나간 참극들이 당면한 비극의 극악함과 참혹함을 경감시키지 않는다.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실시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 인간의 어떤 면을 봐버린 것. 나도 인간이라는 것. 2024123. 어떤 문장을 쓰려는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작가는 탄핵 집회에 참여해 생수를 나눠 준 자영업자의 울음을 기록하며 그와 내가 같은 날()에 베였다라고 241219일 일기에 썼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작가의 이 문장에 위로받았다. 이렇게 고백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4.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 말이다. (중략) 그보다는 사람이, 사람들이 어쩌다 혹은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 멍청하게. 그중에 악이 있다.”

 

작은 일기, 64-64, 황정은

 

불법 계엄을 일으킨 사람과 그 배우자,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공식적 사과를 하지 않고 그를 비호한 정당,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조직들과 그들의 오랜 행적들.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는 그 행태들을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외치곤 했다. ‘저 악마들!’ 그리곤 상념에 빠져 들었다. ‘악마들이라고? 나이브하긴. 저들의 행태를 악을 빼놓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어? 그냥 범법자? 세계가 법에 의해 굴러가는 기계라는 거야? ....악은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야, 악을 천상에서 끌어내려. 인간 세계의 악행을 악이라고 부르면 왜 안 되는데?.. 왜 하필 악마야? 종교인이야? 유치하긴.. 악은.... 그냥 악한들? 그럼 화가 안 풀리는데!.. !!!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어김없이 또 저 악마들’, 하게 된다.

 

 

5.

 

<작은 일기>에서 작가는 가끔 쓰고 있는 원고의 진행 상황을 기록한다. <창작과 비평> 2025 봄에 실린 작가의 단편이 떠올랐다. 작가가 이 단편을 쓰고 있을 때가 이즈음이겠구나, 혼자 짐작해보고 다시 읽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달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영상들, 그러다 보이는 것에도 들리는 것에도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안심하게 만드는 영상들. 쉽게 잠의 배음이 되는 소리들


246-247, 문제없는, 하루, <창작과 비평 2025, 황정은

 

전쟁과 폭우와 폭설로 바깥은 아수라장인데, 이미지와 소리의 멀티버스 터널 속에 잠들어 가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재난의 굉음들. 하지만 바깥은 없다. 그 터널 속이 전부이다. 잠들면 안 된다. 공기를 밀어내며 다가오는 어떤 것을 직시하며 경적을 울리는 존재들이 이 단편에는 있다. 

 

터널에 들어선 차들이 실린더 속 피스톤처럼 공기를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262, 문제없는, 하루, <창작과 비평 2025>, 황정은


 

6.


스탠드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안에 친구와 나란히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는 친구의 이야기를, 나는 내 이야기를. 밤이 깊어 잠이 저 가까운 곳에 웅크리고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본다. 끊길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 아니 독백들. 잠의 숨결 아래 체면에 걸린 듯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한다. 서로의 얘기에 답해야 한다는 어떤 의식도 없이. 단속적으로, 그러나 무언가를 내려놓고, 잠결에 내쉬는 날숨 같은 저 깊은 곳 파편들.

 

그러다 먼 후일, 친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서야 친구에게 답하고 싶어진다. 친구는 옆에 없는데. 그가 마치 듣는 것처럼 속으로 말하게 된다. 뒤 늦은 대화가 이어진다.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으며 오래 전 그 방안에 누워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때 그랬어. 그때 그랬어작가와의 대화도 그렇게 문득 문득 이어져 계속될 것이다.

 

후일 이 작은 일기를 다시 읽으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작가의 일기를 읽으며, 지금처럼 그 날짜의 내 일기를 다시 들춰볼 것이다. 어떤 기억은 공유된다. 기록된 기억들은 더 멀리 날아서 더 많은 기억들과 조우한다.

 

하나의 사건이 각자에게 전혀 다른 해석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윤석열을 지지했던 이들도 <작은 일기>를 써서 출판했으면 한다. 후대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할 권리가 있으니까.

 

(후대까지 갈 것 없이 '000, again'을 외쳤던 이들. 그들의 일기가 나도 궁금하다. 그들은 어떤 신념, 어떤 마음을 가졌던 걸까.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움직인 것은. 서부 지법 폭동을 일으켰던 그 결기로 큰 일기라도 좋으니 출판할 용기를 내길 바란다.)

 

12.3 내란의 아카이빙이 이렇게 시작됐다. 작가는 사적 기록을 공적 기억으로 연결한다. 당신의 기억과 독자의 기억이 만나 대화의 장이 열린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존재들이다. 무수히 퍼져나갈 이 대화의 씨줄과 날줄이 교직해 12.3 내란을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 분노와 저항, 슬픔과 안도로 수놓인 역사가 짜여 질 것이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작가가 말한다. 내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증명해 가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25710일 새벽 그가 재구속 됐다. 잘된 일이다.

 


#가제본서평단 # 도서제공 #작은일기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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