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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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작은 숲에서

 

 

여기 작은 숲에서

햇빛은 나를 벌써

스무 해 넘도록 보았다.

무수한 세월이

이 초록빛 공간 위로

흘러갔다.

시간은 가장자리도 경계도 없는데

우리네 짧은 삶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가.

 

(하략)

 

 

한 장소를 수십년 산책을 해보면 느끼게 된다. 나만이 장소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 또한 나를 인식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발저의 이 산문 곳곳에서 발저도 이 느낌을 공유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산과 숲, 들을 걷고 있으면 그 장소들의 품에 내가 안겨져 있는 느낌. 그 장소들이 나를 넉넉하게 품고 있다는 느낌. 이 느낌이 강렬해지면 내가 안긴 그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말할 수 없는 평온함에 둘러싸인다. 내가 산책을 가장 중요한 일과로 생각하는 이유다. “나는 이제 물결이고, 물이고, 강이고, 숲이다.” , 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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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월딩 : 아마존에서 배우는 세계 허물기 이동시 총서 2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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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근황이 궁금해지는 작가들이 있다. 주류(?) 담론과 정상성에 매몰된 사회의 중심에 날선 질문을 던지는 작가들. 우정을 나눴던 친구가 불쑥 생각나는 것처럼, 이 작가들의 신간 소식과 안부가 가끔 궁금해진다. 김한민 작가도 그 중 한명이다.


그가 신간을 냈다. <언월딩>. 반갑다. “나의 이타카는 아마존이다” 이렇게 서문이 열린다. 김한민 작가하면 이베리아 반도와 페소아가 먼저 떠오르는데, 아마존이라니.


환상을 갖고 출발했으나 환상이 깨진 곳에서 이타카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작가는 쓴다. 아마존에 가졌던 작가의 환상과 그것의 깨짐을 쓴 문장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아마존에 대한 상들이 겹쳐졌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착취라는 단편적인 이미지, 남미작가들의 문학을 통해 남겨진 이미지. 그야말로 후 불면 흔적도 없이 날아갈 껍데기들뿐인 이미지와 환상. 나는 아마존을 모른다.


“아마존은 개인은 물론 인간이 구하고 말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너무 공감한다. 아마존을 넘어 지구 자체로 확대해도 너무 맞는 말이다. 한낱 인간이 지구를? 지구 입장에서 인간은 제일 골치 아픈 생물 종으로 전락했다. 그런 의미에서 언월딩이라는 책 타이틀이 함의하는 바가 더욱 궁금해진다.


“이타카가 널 부자로 만들어주길 기대도 안했는데

길 위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 이미 풍요로웠으니.”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 <이타카> 중, 작가인용.


작가는 “아마존에 대한 환상뿐만 아니라 반환상에도 분투한 결과물”이라고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의 여정이 “함께 떠나는 길”이길 바란다고 쓴다. 집 앞 뒤에서 이상 기후의 열기를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우렁찬 매미 소리를 들으며, 이타카로 떠나는 배에 나도 슬며시 승선한다.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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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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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잎사귀를 품은 숲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향기로운 나무들 사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꿈을 꾸기 위해.

<숲에서, 145면>


이 시를 나는 이렇게 고쳐 써 본다.

무수한 잎사귀를 품은 이 책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향기로운 문장들 사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꿈을 꾸기 위해.


발저 시의 한 연을 읽었을 뿐인데 청량한 산들바람이 몸 안팎을 휘감고 지나간다. 발저의 마법이 지나간 것이다. 우리 내면의 명랑하고 맑은 샘물. 발저의 소박한 문장은 그 샘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마법의 바람이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 샘물은 돌연 밖으로 찰랑대며 흘러넘친다. 아, 신선한 물의 정령! 숲의 정령이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 발저의 문장은 어김없이 그 정령들을 깨운다. 가장 작은 숨결로, 가장 작은 빛의 조각으로.



<전나무 가지,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 푸르고 작아서 아름다운 것들. 이 사랑스런 조합의 책 제목은 이 책에 수록된 짧은 산문의 타이틀이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글이 사람의 마음을 갑작스레 환하게 밝힐 수 있는지. 우듬지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 같은 글이다. ‘당신이 만약 지치고, 낙담하고, 슬프다면 이 편지를 읽어보시오’하고, 사려 깊은 발저가 깊은 숲속 키 큰 나무 옹이 사이에 꼭꼭 접어 넣어둔 편지 같다. 발저의 다정한 손길이 느껴지는 화사한 에세이이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발저의 그늘지고 울창한 숲으로 성큼 들어와 버렸다. 지글지글 끓는 폭염의 나날, 나는 발저와 함께 사계절 변화무쌍한 숲의 구석구석을 걸을 예정이다. “햇살이 노릇노릇” 걸려 있는 한 낮에도, “만물에 무언가 신성한 것”이 내려앉은 밤에도, “달콤하면서도 차가운” 새벽에도 숲 속을 걸을 것이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빛을 흩뿌려 반짝이게 하는 발저와의 숲 산책이라니.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지······”



“나는 형언할 수 없이 즐거운 영혼과 함께 아름답고 경건한 어둠 속을 계속 걸어갔다.” (74면)



이 아름다운 책에는 몇 점의 귀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발저의 형인 화가 카를 발저와 동시대 화가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그림들이다. 발저의 시선과 정신에 담긴 스위스와 독일의 숲과 호수, 산과 대기의 표정과 정서를 간직한 작품들이라 독서의 감흥과 여운을 더해 준다. 인상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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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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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유쾌한, 그러다 돌발적인 도약으로 한 방의 킥을 날리는 제프 다이어야말로 성찰과 유머라는 고난이도의 서커스로 세계를 돌파해가는 작가이다. 그것도 무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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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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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느끼는 작업이나 어떤 종류의 정리. 어느 나이 대를 지나며 가끔 혹은 자주 생각하게 되는 주제이다. 황혼을 향해 돌진하는 열차에 이제 막 올라탄 제프 다이어는 이 책의 마무리가 그 중 하나였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 인생의 한 시기에 내 주변에 모여 거친 별자리 모양을 이룬 경험들, 사물들, 문화적 산물들의 집적에 관한 것이다.”


한 작가의 삶을 통과하고, 그를 형성한 경험과 예술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작가가 직접 그것들을 썼다면 더욱. 작가 자신이 이전에 그가 “알던” 삶이 “끝나가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에 썼다면 더더욱.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체험되는 길 끝의 시간. 흘러간 시간에 별들 같이 박힌 그 경험들을 노년에 이른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 기록했다. 자극과 영감을 주었던 스포츠, 음악, 문학, 철학, 그림, 사진, 영화. 그리고 스포츠맨들과 예술가들. 이 모든 것들의 시간과 함께 작가의 시간도 함께 흘렀다. 시간은 경험의 빛과 파장을 변화시킨다. 이 책은 그 변화들에 대한 기록이다.


(흥미로운 글쓰기 작업이다. 노년에 이른 자신을 통과했던 사람들, 경험들, 예술 작품들을 정리해보기. 어쩌면 너무 방대해서 시작조차 어려운 일이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면 자신의 물살을 만들어 흘러가는 것이 글쓰기가 아니던가. 제프 다이어의 이 책은 그 작업의 방법과 의미에 대해 많은 영감을 준다. 일단 시작하기, 힘 빼기, 우회하기, 머물기, 보내주기, 맞이하기. 이 책이 보여주는 제프 다이어의 회고 방식은 자유분방하다.)


예술 작품과 그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절벽, 시간의 벼랑. 모든 변화들이 수렴되는 하나의 소실점. 제프 다이어의 기억과 문장도 그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한다. 예술가의 황혼과 자신의 황혼. 그리고 그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의 코로나 봉쇄가 상징하는 문명의 황혼. 이 책은 작가 개인과 천재라 불리는 예술가들과, 문명에 길게 드리워진 저묾의 징후들. 빛이 사위어 가는 그 석별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벼랑 끝에 매달린 이들 앞에 단 두개의 선택지처럼 보이는 버티기와 그만두기.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본 제프 다이어는 전한다. 퇴락과 일몰의 의미 그리고 버티기와 그만두기의 이유와 방법이 얼마나 다채로운 스펙트럼 안에 놓이는지를. 누군가에게는 이른 나이에 석양빛이 스미고, 누군가는 노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어떤 이는 쇠락을 부정하고, 어떤 이는 준비한다. 누군가는 그만두었다가 돌아오고, 누군가는 말년에 처음으로 ‘발견’된다. 가장 찬란하게 뒤늦게 도착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태어난다.” (니체, 작가 인용) 그 찬란함과 쇠잔함, 절망과 환희, 아이러니의 순간들이 이 책을 수놓고 있다.


쇠락과 노쇠에 접어든 삶을 사색하는 이 책은 무거운가? 그럴 리가. 60대란 나이를 분명하게 의식하지만 제프 다이어가 아닌가. 어떤 작가들은 늙지 않는다. 그렇게 보인다. 자신의 자신의 노화를 묘사하는 문장에서조차 푸릇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전작들이 새긴 감각의 청춘이 독자에게 너무 깊게 각인된 걸까. 왕성한 호기심, 집요한 관찰력, 작가로서의 성실함, 그리고 엄청난 기억력, 마치 평행 우주 속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동시도 살고 있는 듯한 기억력.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함과 열정. 그리고 유머, 유머. 이 모든 것을 숨길 수 없었던 이 책은 그러니 재미있다. 혼자 계속 “쿡”, “쿡”하며 읽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한 권 작가’의 두 번째 책이 갖는 목적은 자신이 여기까지라는 일종의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이다” 하필 그 예로 나오는 작가가 내가 친애하는 작가지만, 정말 후추 같은 유머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와 동행하는 예술가들이 여럿이지만 작가가 (가장)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는 니체다.(내 생각) 작가는 니체의 문장들을 여기저기 출몰시킨다. 그때마다 웃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모두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오직 나만이 니체를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안 웃을 수가!) 그렇다. 작가는 작가대로, 나는 나대로 이해한다고 착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니체. 웃기고, 슬프고, 반짝이고, 번뜩이는 니체. “가장 심오한 정신은 가장 경박한 정신이어야 한다.” (니체, 작가인용) 이렇게 경박하고 심오한 문장을 누가 또 쓸 수 있을까.


작가의 문장들과 화음을 이루는 또 한명의 작가를 소개하자면 필립 라킨. 작가는 필립 라킨의 유머를 언급하며, “유머 감각에는 웃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쓴다. 솔직하고, 엉뚱하고, 유쾌한, 그러다 돌발적인 도약으로 한 방의 킥을 날리는 제프 다이어야말로 유머라는 고난이도의 서커스로 세계를 돌파해가는 사람이다. 그것도 무심하게.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고 있는 다른 일이 적을수록 존재 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된다.” 얼마나 정확한 통찰인가? 버티기도 어렵지만, 그만두는 것도 어렵다. 버티기 위해 그만두고, 그만두기 위해 버티기도 한다. 존재의 품은 이래저래 많이 든다. 버티고,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는’ 각자의 내면의 삶을 타인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실은 포기 상태일 수도 있고, 생 자체를 버티기 위해 어떤 이는 무언가를, 혹은 모두를 놓아버린다.


제프 다이어가 언급했듯이 “더 큰 맥락 안에서 자신을 파악할 줄 아는” 내적 성찰은 모든 이들에게 할당된 재능이 아니다. 작가가 예를 든 마이크 타이슨처럼 버티기와 그만두기 자체보다 내적 성찰이 우선이다. 자기의 현재 실존 상태를 어디까지 통렬히 꿰뚫을 수 있을까. 버티든 그만두든 자기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행할 것 인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수없이 많지만, 우선 <버닝맨 페스티벌> 참여기와 니체와 베토벤의 연관성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다. 읽어들 보시라. 아름답고 톡 쏜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미약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으니”(셰익스피어,<폭풍우>중에서) “나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열려 있어.”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 미완의 천국>중에서). (이런 아름다운 인용이 계속 이어진다.) “음악은 그 자체의 중력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무중력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때 중력의 일부는 바로 이런 몸부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통찰이 책 여기저기에 반짝인다. 몸부림치지 말지어다. 그것이 너를 지상에 묶어둘지니. 어떤 비상을 위해선 버티기를 멈추고, 그만두어야 한다. 그 순간 삶도 음악이 되는 건가?


도어즈의 <끝The End>로 시작한 이 책은 수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경유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로 마무리 된다. 작가의 문장에 이런저런 이유로 설득당한 나는 음악을 찾아 듣기에 바빴다. 작가가 탐독한, 읽다가 던져버린, 나중에 다시 집어든 문학 작품들 또한 정말 방대해서 그 중 일부를 찾는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많은 음악과 책이 등장한다. 제프 다이어의 박학과 다식에, 예민한 감성과 촘촘한 사유에 놀라게 된다. 그는 음악도 책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경험해서 좋았고, 억울했던 그의 지극히 사적인 예술사가 펼쳐진다. 이 또한 이 책이 안겨주는 즐거움이다.


“나는 큰 목표나 야망, 꿈같은 것을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아주 많은 자잘한 계획, 잔꾀, 취미, 관심사들로 늘 분주했기 때문에 더 원대한 목적이 없다며 아쉬워하거나 더 고상한 위안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이 문장의 진위를 확인시켜 준다. 이 책도 여전한 관심사로 분주하다. 제프 다이어의 여전한 청춘의 비밀은 이 분주함일지도 모르겠다.


제프 다이어의 이 책과 그의 문장은 잘 구워진 크래커 같다. 적당한 소금과 밀가루가 잘 배합된 바삭한 크래커. 짭조름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크래커. 그래서 손이 계속 가는 크래커. 제프 다이어는 천재들의 삶과 황혼을 통해 ‘삶’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이야기한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그것. 땀과 휴식, 눈물과 웃음, 고통과 환희, 승리와 좌절, 권태와 유희, 회한과 안식으로 반죽된 그것.


작가는 니체가 농담과 성찰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고 적는다. 싱거운 유머 속에 페이소스가 짙게 깔린 이 책도 역시 농담과 성찰로 분주하다. 이 책은 필멸하는 인간의 공평한 운명에 대한 오마주이다. (너무 깊게 알아버려 외롭고 불행했던 니체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혔다.) 최후의 승자는 모든 것을 지극히 무관심하게 관장하는 무심한 시간이다. “가장 무거운 무게”(니체, 작가 인용)를 지닌 “끝을 맞이하는 상황”,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그의 화법이 좋다.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서 좋다. 짭조름해서 좋다.


P.S.) 니체가 틀림없이 반했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 제프 다이어가 장담한 작가, “에스키모가 눈을 알 듯” 남부 캘리포니아의 바람을 아는 그 작가의 책이 국내에 어서 번역되기를 바란다.


#예술#예술가#에세이#제프다이어#라스트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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