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생의 책
후안 비요로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6월
평점 :
일생의 숨박꼭질 대상이 있다면, 내게는 싱겁게도, 아니 거창하게도 책이다. 10대 시절, 대학생이던 10살 터울 친족의 책장 안 책들은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수많은 문들과 같았다. 책 한권을 빼 읽으면, 그 책이 있었던 빈 공간만큼 세계를 보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들뜸.(순진도 하지!!) 징글징글하게 몸과 마음에 든 습에 취약한 종인지라,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책에서 무언가를 찾는다.(순진도 하구나...) 책과 책 사이의 빈 공간에 눈을 대고 금붕어처럼 눈을 끔뻑인다.
하지만 일생의 연애에도 권태는 찾아오는 법, 책과의 연애도 예외는 아니다. 책에게 무엇을 원하나(진리, 진실, 믿음, 웃음, 깃발, 장미, 빵, 나무, 기차, 바다, 생크림, 맥주, 소화제, 해열제.. 해독제...근육이완제....... 수면제, 박멸제,............ .... &%$%&........구원.......... ??), 너무 시끄러운 책(과잉), 너무 과묵한 책(결핍), 거추장스러운 책(다른 의미의 과잉과 부담), 찾을수록 꽁꽁 숨어버리는 책(밀고 당기고). 사랑의 연료라 할 수 있는 호기심이 말라붙어 만사(책사)가 심드렁해진 이때 이 책의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움직이고, 독자를 선택하는 책이라고?? 제목도 <야생의 책>. (제목을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야성의 엘자’, 동시에 사자의 포효가 울려 퍼진다. ..연식이...)
제목으로 호기심에 기름을 붓는 <야생의 책>. 야생성을 간직한 책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혹적이다. 야생성이란 무엇인가? 길들여지지 않고, 제 본성대로 살아가는 성질이지 않은가. 책춘기, 책태기 중인 내가 찾던 책이 바로 이것 아닌가. 세련된 포장으로 무한 복제되는 동어 반복의 책이 아니라, 제 생명력으로 오래도록 살아남아 성질대로 으르렁대는 책. 그래서 펼쳤노라, 읽었노라.
과연 그랬다. 소년 후안, 소녀 까따리나가 탐험에 나선 띠또 삼촌의 도서관에 꽂힌 책들은 살아있을 뿐만이 아니라 본성대로 제 삶을 살고 있다. 그 책들은 각자 움직이고, 창조하고, 꿈꾸고, 찾아 나섰다. 동시에 서로 교류하고, 시샘하고, 상처주고, 충고하고, 위장하고, 훔치고, 달아나고, 협력한다. 후안과 까따리나는 이 기묘한 도서관에 머무는 동안 책들의 삶과 생태를 깊게 관찰한다. 소년이 내게 들려준 책의 생리와 생태는 이렇다.
한 권의 책은 거울이자 호수이다. 책은 세상을 비춰 독자에게 길을 제시할 뿐만이 아니라 독자 자신을 비춰 자신을 직면하게 한다. 용기 있는 독자는 책의 수면에 투영된 자신을 받아들인다. 좋은 책일수록 수심이 깊다. 이런 책은 깊이 들어다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소리 없이 작동하는 모터”를 가진 “가장 훌륭한 교통수단”이다. 빛과 에너지를 가진 글자는 독자에게 삶의 심해를 탐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의 힘을 길러준다. 과거로, 미래로, 지하로, 대기권 밖으로 멀리, 멀리까지 오염 없이 데려간다.
훌륭한 책은 훌륭한 독자다. 이 놀라운 책들은 독자를 읽는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저마다 다른 삶과 마음을 가진 독자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알아보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길고 긴 대화를 나눈다. 책에는 저자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책과의 교분은 잠자는 책의 영혼과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약효를 얻기 위해 약병을 흔들 듯, 타인과의 만남과 성장을 위해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책은 시간이 합류해 소용돌이치는 장소다. 책은 “인류의 외부 기억장치, 즉 기억의 창고이다.” 동시에 책은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미래의 인큐베이터이다. 하지만 그 책을 지금 이 순간 펼치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현재로 끌어올 수 없다. 책을 읽는 행위는 기억의 과거와 희망의 미래를 현재라는 순간에 포개놓는다. 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책은 되어 진 세계와 되어 질 세계, 되어 진 나와 되어 질 나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조정해준다.
하나의 책은 하나의 계단이다. 충성스러운 책들은 독자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를 향해 기꺼이 계단이 되어준다. 한 권의 책은 다른 한 권의 책을 부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호명된 책들이 모여 지상으로, 혹은 지하로 이어진 책의 계단이 만들어진다. 독자는 그 계단을 딛고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낯선 세계로 나아간다. 발밑에 내 눈길이 속속들이 닿은 지지대가 느껴지면 그 낯선 세계로의 모험이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
책의 삶은 함께 읽힐 때 더 풍요로워진다. “강물처럼” 책을 읽는 독자들은 서로의 독서 경험을 나눔으로써 책의 흐름을 계속 바꿔놓는다. “강물처럼” 책을 읽는다는 건 세계가 흘러가는 맥락을 책의 맥락에 이을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독자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맥락의 양과 질에 따라 한 권의 책은 다르게 독해된다. 하나의 책에 대한 저마다의 독해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그 책은 더 이상 한권의 책이 아니다. 함께 읽은 독자의 배수만큼 겹겹의 책을 품은 비옥한 책이 된다.
신비한 도서관에 관한 소년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계속되는 책의 비밀들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이 책을 읽다보면 비유가 아닌, 진실로 도서관은 영혼의 숲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의 소리를 듣고, 다시 쓰여 지고, 잠자고, 침묵하고, 깨어나고, 말 걸고, 독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영혼들.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 책의 피부가 나무의 섬유로 만들어진 사실까지 얼마나 근사한가. 그래서 영혼의 숲, 도서관에서는 나무의 살결이 전하는 촉감과 향기로 책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이 멋진 장소에서 진정한 독자는 진정한 저자가 된다. 영혼의 미로와도 같은 도서관은 보이지 않는 기억의 문신들로 빼곡하다. 그 문신들은 읽고자 하는 간절함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독자의 간절함이 텍스트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현재 진행형으로, 매 순간 쓰여 지기를 원하는 책. 그런 만큼 세계의 생생한 현실을 살아가며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점으로 해석할 지혜를 갖춘 독자, 자신을 간절하게 원하는 독자에게만 빈 페이지를 열어 보이는 책. 길들여지기보다는 차라리 사라지기를 선택하는 책. (성깔!!)
이 책이 소년이 그토록 찾아 헤맨 야생의 책이다. 만만치 않은 책은 만만치 않은 독자를 원한다. 고집스럽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것이 영락없이 삶과 닮았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읽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써야하는 빈 페이지들의 삶. 내 앞에 펼쳐진 빈 시간의 페이지. 이 책은 이렇게 책과 독서, 삶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책이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도착하듯, 후안의 동생 까르멘이 존재의 경계를 넘어 인형들과 대화하듯, 이 책은 책과 책, 책과 독자, 저자와 독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교란하고, 전복시킨다. 책과 독서, 삶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 생각에 우리는 좋아하는 책을 진심으로 열심히 찾는 지극히 평범한 독자일 뿐이었다.” 좋아하는 책의 내용이 무엇이든, 열심의 강도가 얼마이든, 관건은 ‘진심’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야생의 책을 알아본 것은 까르멘의 봉제 인형 토끼였다. 까르멘이 진심으로 믿은 인형의 생명이 이 탐험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이다. 야생의 책은 “글자 없는 책”이다.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소년도 나도, 이 탐험으로 배웠다. 내 삶의 최초 독자도 나, 최후 저자도 나이다. 괜히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빈 페이지들 앞에 전전긍긍하는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까. (없다고? 이 책을 펼쳐보시라. 여럿 만날 수 있다.)
PS. 미래의 독자는 과거의 맛이 나는 짭짤한 쿠키와 미래의 맛이 나는 달콤한 쿠키, 오묘한 맛의 현재의 쿠키를 준비하고 책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은 입맛도 야생으로 돌려놓아 온갖 음식과 레시피로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