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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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예술이 상호 침윤하여 발하는 오묘한 색채에 읽는 내내 탄복할 수 밖에. 

작가 본인이 인정하듯 안정되고 완벽했던 유년 시절과 그 이후 길게 이어지는 상실의 지난한 시간들. 삶의 양 극단을 횡단한 작가의 글에서 회한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이한 명암을 통과한 이가 도달하게 된 어떤 종류의 경지 혹은 여유가 드러내는 절제, 품위, 재치. 

풍요로운 자연과 예술과 지성이 성벽처럼 둘러싸인 세계. 3층의 저택과 시골 영지들, 20세기 초 50여명의 하인, 성장 단계마다 계급과 인종을 달리해서 배정된 가정교사들, 해외 연휴들. 배급을 받으려 줄 선 여자들을 보며 부부가 나눈 대화. 이 묘사들이 안겨주는 생경함과 복잡함. 

기억의 천재, 기억의 예술가가 뽑아내는 은사같이 빛나고 섬세한 문장으로 엮은 지복과 비극.   

읽는 내내 제발트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  유년과 기억, 상실과 망자들, 이산과 여행, 역사와 개인.

장소와 시간들.

그리고 빛바랜 사진들.

그리고 나비, 나비, 나비. 

나보코프 독자들만이 아니라

제발디언들도 반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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