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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이 책을 연초에 읽게 되어 운이 좋다. 돌처럼 단단한 사람들의, 흙 같이 살리는 책. 이런 수식어조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책이다. 오랜 경험에서 육화된 지혜를 심상하게 전하는 화법이 단백하다. 그 단백함의 깊이야말로 진실에서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중언부언 사족은 다 털어내고 고갱이만 툭툭 내놓는다. 그들의 생생한 육성에 머리가 화하게 시원해진다.
힘, 당당함, 떳떳함, 자부심, 자유.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단어들이다. 이 여성들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해 준 현장의 노동과 임금이 그들 삶에 준 목록이다. 물론 그에 합당하게 그들이 치른 대가는 매일의 노동과 버팀이었다. 버티고 애썼던 시간들 또한 인터뷰 전반에 녹아 있다.
인터뷰이들은 남초 직군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라 겪게 되는 성희롱과 부당한 처사에 대처했던 경험들 또한 들려준다. 일터의 조건,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대처법들에 그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노조가 필요한 이유 또한 이 책을 읽으면 더 분명해진다.
기획도 좋고, 인터뷰 자체도 군더더기 없이 너무 좋다. 다양한 여성 노동 현장의 당사자들을 인터뷰한 책들이 더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사회학이나 여성학 측면에서 여성 노동을 분석한 책들은 그것들대로 필요하지만, 현장의 여성 노동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더 알려져야 한다. 이론서, 사회비평과는 확연하게 다른 현장감과 울림이 있다.
30년 전 이 책을 읽었다면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내 성향을 제대로 알았을까. 다른 선택지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런 의문들이 이어졌다.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는 날에, 생의 단단함을 느끼고 싶을 때 짱돌 대신 쥐어들고 싶은 책이다. 깨지지 않는 마음들, 스스로의 존엄을 단단하게 움켜쥔 사람들이 이 책속에 있다.
모든 인터뷰는 여성 노동자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올 한해 (아니, 내 남은 평생) 듣고 싶은 덕담을 몰아서 다 들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일 연장자인 71세(올해)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님의 말을 나누고 싶다. “어른이 되고 생활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