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월딩 : 아마존에서 배우는 세계 허물기 이동시 총서 2
김한민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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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월딩>은 거울 같은 책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아마존과 원주민 이야기는 동시대를 사는 비원주민의 삶을 역으로 비춰준다. 자본주의가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며 사회화된 나는 자본주의의 일부이다. 아무리 그 밖을 상상하려 해도, 그 얽힘이 너무 강해 나는 시작부터 주춤한다. 자본주의를 생각함은 내 연루됨을, 내 회피와 방관, 타협과 합리화를 직시하는 것이기에 나는 멈칫한다.


아마존의 어제와 오늘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강력한 힘으로 추동되는 정치경제문화의 자장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북반구 선진국의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한민 작가가 책에서 우려했듯이 나 또한 타자화로 미끄러지는 건 아닐까? 그들에게서 나 역시 무언가를 ‘추출’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읽는 내내 자기 검열은 어쩔 수 없었다. 타자의 삶, 그것도 진행 중인 착취의 한 가운데에 있는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생각을 여러 부분에서 읽을 수 있어서 독자로서 안심되고, 배운 것이 많다.


비명 속에 살아가기. 나는 무수한 비명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이명처럼 지니고 산다. 투입과 배출 모두 과잉으로 연명되는 과잉의 체계. 과잉을 유지하기 위해 갈려나가는 존재들의 비명. 김한민 작가는 이러한 현상태를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이미 죽어가는 세계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만 영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은 더 많은 것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종말을 늦추는 방법만 알 뿐이다.” 얼마나 정확한 진단인가. “지구의 모든 자양분을 빨아들여 임종을 연장하면서 새로운 싹이 트지 못하게 가로막고 버티는”낡고 비대해져 죽어가는 괴물이 된 시스템.


어떻게 자본주의로부터 지구를 지켜내고 새로운 세계의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작가는 “언월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월딩이 제대로 이뤄진 후에 비로소 다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언월딩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를 괄호 안에 넣어, 낯설게 바라보고, 질문하고,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언월딩의 출발은 본질주의적 세계관을 의심하고, 지금까지 “행해진” 것들의 배경을 인식하고, “다르게 행해질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소비와 생산의 무한 반복으로 유지되는 단일 세계의 굴레에서 내려와 그 세계의 폭력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내 생존과 생활 방식이 깊게 연루된 그 체계의 균열과 무너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세계와 불화하며 자기기만과 모순 속에 이런 질문을 하는 이가 나뿐일까. 작가는 언월딩을 먼저 경험한 이들, 세계의 허물어짐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 “세계는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아마존 원주민 카리푸나족이다. 이 책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하고, 발견한 것들을 담고 있다.


김한민 작가는 현재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ISCTE) 박사 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 중이다. 이 책은 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작성한 에세이들을 기반으로 쓰여졌다. 그런 만큼 책은 인류학 연구자의 시선으로 작가가 가진 문제의식을 벼려낸다. 작가가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전투중인 아마존 원주민의 복잡한 삶의 맥락을 드러낼수록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취약성, 그 존재의 상대성(자본주의 또한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또한 드러난다.


자본주의라는 단일세계 속에 사는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에 따라 살아가기를 교육받고 권장 받는다. 이윤 추구와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사회적 생산자로서 역할을 근면하게 완수하고,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소비하고, 소비하고, 소비하는, 더 많이 축적하고 소비하는 것이 ‘성공한’, ‘좋은’ 삶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세계 80억 인구가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노래만 부른다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그런데 세계는 이미 하나의 멜로디에 맞춰 집단적인 군무를 추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아마존의 이야기는 숲에서 만들어지는 동시에 그 이야기 자체가 숲이라고 말한다. 밀림의 기호를 해석해 가며 “존재하지 않는 길”을 만들어가기. 밀림 속에 새로이 만든 길은 새로운 이야기, 다른 삶의 가능성이다. 단일 세계를 풍요로운 이야기의 숲으로 변화시키려면 “우리의 수용기를 다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비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숫자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의 수용기에 무수하게 열린 창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이 될까.


책은 아마존 원주민과 숲의 현실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카리푸나족 땅에서 자행되는 삼림 파괴는 비유로써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이다. 그 전쟁은 아주 오래 시간을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 만연한 묵인과 방관, 침묵 때문에 주목받지 못할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누군가의 시작이 그들에게 지속적인 종말을 의미해왔다.


카리푸나족은 대대로 이어온 세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종말 전문가가 되어 싸우고 있다. 이 부분을 설명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또 그것을 저 한 문장으로 옮기며 나는 머뭇거린다. 계속 맴도는 단어들, 한 세계의 붕괴와 종말 전문가.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종말을 사는 사람들이 감각하는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진행 중인 상실과 절멸의 예감은 어떻게 감각되어질까. 그 감각은 나에게 낯설기만 한 것일까? 나도 이미 세계의 종말을 감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나의 막연한 불안을 그들의 저항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저항한다. 그들이 내외부의 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지 저자는 이 책에 자세히 기록한다. 동시에 저자는 원주민들의 삶을 지지하고 도움을 주는 방식,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는 방안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들 또한 보여준다. 언론에서 아주 가끔, 반짝하고 스치는 아마존 관련 기사처럼 매끈한 서사는 어디에도 없다.


10장은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의문을 잘 보여준다. 거대 테크 기업 아마존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기만성에 새삼 아찔하다. 아마존이 상징하는 생명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파괴하면서 그 이름과 이미지를 재전유하는 그들의 폭력적 전복성과 놀라운 영업력. 소수의 기상천외한 이윤 추구를 위해 자원과 노동 착취로 유지되는 기업 아마존이 번창할수록 생명 그 자체인 아마존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제적 유통망의 365일 24시간 멈춤 없는 흐름은 자원 투입과 탄소 배출의 멈춤 없는 흐름을 의미한다. 아마존 대 아마존은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폭력성을 드러내는 메타포, 아니 지극한 현실이다. 아마존을 살(buy)것인가. 아마존을 살(live)것인가?


인류의 역사에서 자본주의 역사는 500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폐해는 이미 그 이익을 넘어서고 있다. 자본주의가 자초한 기후 위기로 인류의 자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수혜를 계산하는 것은 어리석다. 절벽에서 추락하며 지갑 속 현금 생각에 웃을 수 있을까. 저자가 제안하는 언월딩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과 경험을 재사유하고 재구성, 재배치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너머, 그 이후의 세계라는 과제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실행의 격변성에 주춤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도록 할 것인가. 언월딩. 저자가 제안하는 언(un)-하기는 인식과 실천의 영역에서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익숙한 세계관과 생활양식을 재고하기, 취소하기, 해체하기, 다르게 살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함’을 연마하기. 욕망을 언월딩하고, 일상을 언월딩하고, 관계를 언월딩하기. 구조를 언월딩하도록 힘을 모으기. 무엇보다 상상력을 언월딩하기. 작가가 그랬듯 다른 세계와 접속하기.



어떤 독서는 완결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다. 이 책의 독서는 행동으로만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타카로 떠나는 시로 시작한 이 책의 맺음말에서 작가는 “오디세이 같은 ‘해피엔드’도 없이, 이 이야기는 완결을 모르고 끝없이 이어지기만 한다.”고 쓴다. 한 배에 올라탄 독자도 끝없이 이어지는 그 항해를 계속해야할 운명을 공유한다. “얽힘이란 그렇게 우리의 질긴 참여를 요구한다.” 160 페이지 얇은 책이 주는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 질문들이 무겁고, 제일 무거운 것은 내 몫으로 주어진 대답과 그 실천의 무게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웃으며 가볍게 한 발을 내딛는 전략의 언월딩 또한 갖춰야겠다.


책의 마지막, 원주민 노인 아라파는 작가에게 카리푸나족 샤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리푸나족은 자연존재와 자연현상에 영혼,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꿈-기술”(오몽거) 속에서 비인간존재들과 춤을 춘다. 따삐르 혹은 페커리와 나란히 서서 팔이 얽힌 상태로 스텝을 밟는다. 인간과 숲의 존재들이 “모두가 정령이 되어” 춤을 추며 하나가 된다. “평범한 환자로 보이는 한 노인이 이토록 풍요로운 세계”를 품고 있음에 작가가 그랬듯 나도 놀란다. 아마존의 영혼들은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분별 너머의 공간에서 만난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대기와 대지만의 독특한 리듬에 맞춰 이들은 서로 얽혀 춤을 춘다. Shall we dance? 저마다 다른 자연 환경 속에서 각각의 환경이 연주하는 서로 다른 리듬에 맞춰 팔을 걸고 스텝을 밟는 비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다른 존재에게 여는 것으로부터 언월딩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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