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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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말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저 사람들. 다들 먹고 살만 한 사람들이잖아. 돈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니잖아?” 친구는 말했다. “권력 때문이지 않겠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권력이 뭔데? 그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나?’ 나 같이 안전과 안정 지향적인 사람은 이해 못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6개월 째 일일 갱신하며 내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 조금 위기다.

어제 새벽 N번째 내란이 있었고 세상은 아무 일 없듯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고 (그럴 리가!), 두렵고, 지치지도 않고 화가 나고, 이런 나에게 지치고, 아침부터 폭식을 했고, 봄비 내린 산책로가 기대돼 평소 같으면 신나게 나가, 하염없이 걷고 있을 산책을 나갈지 4시간째 고민 중이고, 조금 울고 싶고, 몇 시간째 한 자리에 앉아 창 밖에 좋아하는 봄비와 연초록 나무들을 바라보며, 세계가 너무 기괴해... 기괴해.. 라고 생각 한다.

끝끝내 이해 못할 사람들 일 텐데, 마치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듯이, 매번 번번이 놀라고 황망해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답답해서 SNS에 들어가고, 분노를 식히기 위해 나오고, 더 불안해져 돌아가고. 반복된다. 일상이 어그러지고, 분노가 나 자신을 향한다. (((왜 저런 것들 때문에!!)))

저들을 보며 생각한다. 인간의 밑바닥이라는 건 대체 뭘까? 내가 ‘저들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부르는 ‘저들’에 나는 없나? 인간 종은 어떤 존재인가? 내가 인간인 것이 참 싫다. (그래서 요즘 동물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결과는? 인간인 것이 더 싫어지고 있다.) 나를 보며 생각한다. 왜 자신의 분노와 환멸과 무기력에 이렇게 휘둘리나? 나는 이렇게 약한 인간인가? 내내 하는 생각은 이런 거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저래?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어?

뜨거운 모래바람에 펄럭이는 뜯겨진 폐비닐처럼 마음이 후텁지근하게 들썩인다. 경악과 냉소로 마음이 마모된다. 우수수 마음의 모래성이 흘러내린다. 이웃 나라에서는 희대의 빌런이 ‘민의’로 재선에서 승리하고, 그가 발언하는 족족 세계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세계의 불행을 알리는 사진들이 SNS에 떠돌고.

마음이 한없이 어둡게 들뜨는 지금, (이런 지금들이 6개월째다.) 마음의 누름돌이 필요하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분투, 인간의 가능성과 인간의 한계, 무엇보다 인간의 자정 능력, 인간의 회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누군가, 같은 의문과 간절함을 가진 누군가가 필요하다. 지혜를 신뢰하는, 그래서 지혜를 모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긴 안목과 인내력을 가지고 인간과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조곤조곤 느리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지혜로운 친구가 절실하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철학자들이잖아. 지혜를 사랑해서 지혜를 사랑하는 전통을 인류사에 깊이 새긴 사람들. 마침 고명섭 작가의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가 도착했다. “철학의 숲으로 난 길이야말로 지혜를 찾는 자에게 가장 친숙한 길이다.” 음, 그래. 맞아. 마음을 다독인다. 오늘 하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부엌 대청소). 책을 펼쳐 지혜로운 자들에게 살짝 기대 마음을 털어놓고(제일 급함. 비밀 보장 됨), 정신을 활짝 열어 환기시키고, 그들과 대화하며 어지러워진 정신을 정리정돈 해야겠다. 먼지를 털고, 버릴 건 버리고, 방향을 바꾸고, 제자리를 찾고, 필요한 리스트를 정리하고, 구비할 건 구비하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맑게 할 좋은 향도 피우도.

“철학의 숲에서 만난 이들은 다 사유의 친구다. 친구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중략) 이것도 작은 사유의 숲일지 모른다. 숲은 숲을 키운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까무룩 자꾸 잠들려 하는 내 정신에 건네는 말 같다. 이 어둠 속에서 눈 감지 않기 위해, 졸음에 지지 않기 위해. (너무 진부하고 끈덕진 악에 자꾸 졸음이 쏟아져, 하품이 나지만 진저리가 나. 웃기지만 전혀 안 웃겨. ) 사유의 친구들이 내민 손을 꼭 잡고 철학의 숲으로 들어간다.

아, 책이 묵직해서 좋다. 이어지는 불면의 밤들, 책을 펼치고 거닐 수 있는 사유의 숲이 넓디넓어서 좋다. 그 숲에서 자유로이 걷다 잠들 생각을 하니, 안심된다. ((나는 깊은 밤에도 숲을 산책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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