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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수업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안온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음악 수업>은 성현의 배에 올라탄 백아를 묘사한 장면처럼, 인상적인 많은 이미지들을 품고 있다.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마랭 마레가 스승의 음악을 듣기 위해 그 아래 자리 잡게 되는 생트콜롱브의 뽕나무 오두막이다. 이 장소에서 마레는 생트콜롱브가 간직한 음악의 비밀을 엿듣는다. “이 오두막은 이미 악기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 그 아래 몸을 웅크린 마레는 잉태된다. 여름의 끝자락 그는 출산된다. 그는 음악으로 익는다. 그의 음악은 “뽕나무 열매처럼 진홍색을 띠게 된다.”
“뽕나무 아래 달팽이들은 빛의 파편들을 남긴다.”
마랭 마레의 연주는 빛의 파편인가. 키냐르는 나아간다. “뽕나무 열매는 빨간색을 띠다가 자주색이 되면서 까맣게 변하는데,” 뽕나무(murier)는 익다(murir)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명칭을 지닌 유일한 나무라고 한다. 키냐르의 문장들은 회화적이다. 기이한 것은 키냐르가 회화적인 장면을 묘사하지 않아도, 철학적인 그의 문장들 또한 회화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한 그의 명상을 함께 하며,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와 색채들이 형상화되는 것을 감지한다.
책의 겉표지는 검은빛의 보라색이다. 까맣게 변한 뽕나무 열매의 바로 그 빛이다. 마레가 도달하고자 했던 음악의 색체도 이런 빛이었을까. 책의 속표지는 회색, 자주색, 검은색, 흰색이 어룽거린다. 한 폭의 추상화. 성가대에서 쫓겨난 마레가 배회하는 9월의 강물을 표현한 걸까. “황금을 담뿍 품은 일종의 농후함이나 안개가 섞여 그 자체로 붉어진 혹은 흐려진 빛이다.” 아름다운 문장이고, 아름다운 책 표지이다. 나는 이 속표지에서 또한, 키냐르가 쾌락을 위해 울음소리로 서로를 부른다고 묘사한 작은 생명체들의 힘찬 음성을 듣는다. 아우성치는 생명들의 합창.
이제 곧 그들의 계절이 온다. 봄밤 그들의 요란한 구애의 소리를 듣거나, 정혼의 음성 같은 농밀한 선율을 만나면 나는 이 책과 오디 빛의 보라색을, 한 폭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