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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 - 고전 속 퀴어 로맨스
숀 휴잇 지음, 루크 에드워드 홀 그림, 김하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2월
평점 :
농밀하고 앙큼한 카룰루스의 시 48은 러브레터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이 편지를 읽고, 내가 이 시인에게 빠져버렸다. 하지만 반전. 다음에 이어진 시 16은 같은 카룰루스가 맞나 싶게, 질투와 분노에 활활 타올라 표정과 어조가 돌변한다. 그는 “수천 번의 키스”와 “달콤한 입술”을 노래하면 남자답지 못한 것인가? 라고 반문하며 이글거린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의 표현들을 꼭 읽어들 보시라. 나는 이 시인에게 더 빠져버렸다.
시인 카룰루스가 남성성을 되묻는다면, 시인 마르티알라스는 여성성을 전복한다. 마르티알라스가 묘사하는 앤드러자인(양성애자) 여성 필라이니스는 성적 쾌감을 추구하는데 거침이 없다. 거침없음을 표현하는 시인의 언어 또한 거침없다. 노골적이고 아찔하다. 이렇게 솔직한 성적 지향과 성애 표현이라니. 젠더의 허구성을 비트는 두 남녀(?) 시인의 시들은 이성애 중심의 섹슈얼리티에 균열을 일으킨다.
플라톤의 <향연>과 크세노폰의 <향연>은 모두 신성한 사랑과 범속한 사랑을 구별해 논한다. 이 때 사랑의 주체는 남성들이며, 신성한 사랑은 영혼의 사랑이며, 범속한 사랑은 육체적 사랑이다. 남성들 간의 사랑이지만 구성은 성인 남성과 소년이다. 잘 알려진 역사지만, 연설문을 직접 다시 읽으니,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남성 동성애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지, 여성 혐오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그 결과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가늠이 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남성 동성애가 전쟁과 정치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어떤 정동으로 강력하게 작동했는지 보여준다. <모랄리아>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전쟁에서 전사들을 움직이는 힘으로써 에로스를 주장하는데, 실제로 <아이네이스>의 베르길리우스와 <일리아스>의 호메로스는 각자 써낸 이야기와 인물들을 통해 전사들의 능력과 에로스가 어떻게 호응해 전투를 이끌었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이 작가들 외에도 이 책의 다른 많은 작가들이 그리스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퀴어한 에너지의 흐름을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는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인식되었던 걸 증명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의 공고한 이성애 중심 사회가 자리 잡게 된 맥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산업화, 계급, 사유재산,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의 핵가족, 여성과 자녀 통제, 소수자 억압, 그리고 이 거대한 체계를 떠받들며 기생하는 종교. 모두 연결된다.
역사를 보면 현재의 규범적 이성애 중심 사회 또한 하나의 현상이다. 다행히 이 현상 또한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법과 제도, 종교. 온갖 차별과 혐오로 찍어 누르기에는 계급 사회와 가부장제, 그리고 종교의 밑바닥이 너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정치 세력이 미래를 선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