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 - 고전 속 퀴어 로맨스
숀 휴잇 지음, 루크 에드워드 홀 그림, 김하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2월
평점 :
첫 페이지를 펼치고 나는 오랫동안 머물렀고 행복했다. 풀빛 봄기운으로 충만한 초원, 잘생긴 보랏빛 말 등에 앉은 남자의 육체. 그 또한 풀빛이다. 그들 아래로는 푸른 개울물이 유유히 흐른다. 이 책 <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의 그림을 그린 루크 에드워드 홀의 그림 속 인간들은 스스럼없이 자연이다.
이 세상이 봄으로 접어들며 꽃으로 타오를 때
에로스도 때맞춰 깨어난다.
(중략)
소년이여 너는 말과 같구나.
이미 씨앗을 물리도록 삼키고서
솜씨 좋은 기수와 탁 트인 초원, 수정처럼 맑은 개울,
그늘진 숲을 찾아 나의 마구간으로 돌아왔구나.
이 책의 작가 숀 휴잇이 처음으로 인용한 시는 테오그니스의 <애가>이다. 봄과 에로스, 봄기운에 깨어나는 초원과 개울물, 숲, 그리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소년. 시인도 역시 인간이 자연임을 표현한다. 서로에게 스며든 시와 그림이 마음을 더없이 평온하게 해준다.
고대와 퀴어. 나를 늘 매혹하는 두 단어로 이 책은 나를 잃어버린 세계로 초대한다. 루크 에드워드 홀의 말마따나 “신화는 일종의 통로가 되어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그 다른 세상이란 이미 있었고, 지금도 현존하는 봉인된 세계 일 뿐이다. 이 책 <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는 그 봉인을 풀어헤친다. 고대 지중해의 숲과 절벽, 강과 바다에서 사랑하고, 질투하고, 상심했던 퀴어들의 생생한 신화는 현실 퀴어의 풍요로운 삶을 강렬하게 비춰주는 태양이 된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플라톤, 호메로스, 플루타르코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사포, 키케로... 우선 눈에 들어오는 작가 목록이 화려하다. 여기에 카룰루스, 테오그니스, 마르티알리스... 낯선 이름들이 이어진다. 먼저 미지의 작가들 시 몇 편을 읽어보니, 너무 좋다. 아름답고, 대범하고, 여리고,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에 향긋하고 따스한 소생의 강물을 흘려보내는 퀴어 로맨스의 시원에 느긋하게 발을 들여 놓는다. 단단한 껍질이 씻겨 내려간 내 발목도 지중해 퀴어 목동의 마음처럼 약동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