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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9
제럴드 머네인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평점 :
“정말로 어디까지 평원인지는 한 번도 합의된 적은 없었다.”p17
왜일까. 이 책의 처음 몇 페이지를 나는 논픽션으로 읽었다. 수 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원, 헤아릴 수 없는 부, 예술과 철학으로 일상의 대부분을 나른하게 보내는 대지주들, 그들을 아늑한 생나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방면의 학자와 예술가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유일한 주재자이자 목격자인 평원. 이것이 현실 속 어디쯤이란 말인가, 나는 상상하려 애썼다.
화자의 음성 너머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반 너무도 가까운 작가의 음성에 나는 그만 이 책을 논픽션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픽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졌던 전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평원처럼. 그때부터 나는 이 책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온전히,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 자체를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 속 또 하나의 평원으로 인식했다”p19
종래의 시공간에 관한 의식을 배반시키는 평원. 유일한 행위자로서의 평원. 외부와 거의 단절한 채 자발적인 고립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평원인들. 그들만의 왕국에서 마치 그리스 로마의 귀족들처럼 언제나 느긋한 모습으로 철학과 종교를 논하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인간의 온갖 분란과 갈등, 애증이 평원인들에게는 한갓 의미 없는 소란, 먼지를 일으키는 들썩임일 뿐이다. 그들은 무심하다.
“평원은 인간이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유용한 은유의 원천일 뿐이다”p121
평원은 현상이다. 평원은 지평선 너머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무한의 시간이다. 평원인들은 시간의 한 귀퉁이에서 시간의 가장자리가 색채로 물드는 것을 바라본다. 평원은 실재하는 장소이자 인간 개개인의 알려지지 않은 마음의 정경이다. 평원은 상상력의 무한함이며 캔버스의 유령이다. 세계의 재현과 이해의 불가능성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다. 평원은 광활함 그 자체로 거대한 소외를 낳고, 평원인들을 묶고 그들을 소유한다. 평원인들은 평원에 붙박인 채 나부낀다. 그들은 햇살이 만드는 패턴의 의미를 좇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 너머를 본다. 평원은 전부이기 때문에 무엇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평원은 어둠의 눈이다.
“우리는 눈 모양의 세계 안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네. 그리고 우리는 그 눈이 내다보는 다른 땅들을 아직 보지 못했어.” p134
아름다운 문장이다. 시적이고 회화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머릿속에 평원을 그리고 또 그려 보아야 했다. 작가와 대지주들의 눈에 비친 평원의 묘사, 그들의 사색과 대화들을 따라가다 보면 평원의 지평선은 더 멀어졌다. 내가 처음 머릿속에 그렸던 평원은 평원도 아니었다. 흐릿하고 다다를 수 없는 세계의 저 먼 곳을 응시할수록 지평선은 더 멀리, 멀리 달아난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여정이니 하는 진부한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 중략 - 평원인 가운데 실제로 여행을 해본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을 알고 거의 매일 놀라고 있다. - 중략 - 자신의 좁은 지역을 마치 그 새롭게 발견된 머나먼 땅 너머라도 되는 듯 정교하게 묘사하여 동등한 영광을 얻는 이들이 수십 배 더 많았다” p100
나는 매혹됐다. 번역자 박찬원에 의하면 85살의 작가 제럴드 머네인은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 호주를 떠나 본적도,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으며 21세기에 들어설 때까지도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도사들의 삶의 방식에 깊이 매료된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작가에 대한 짧은 스케치를 읽고 나는 이 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 작가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됐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더 궁금해졌다.
“보이는 세계라는 것이 어디엔가 있다면, 그것은 어둠 속 어딘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무한한 바다에 둘러싸인 하나의 섬일 것이다” 131
이 책에서 사물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응시는 이 책에서 묘사된 도서관의 (그렇다, 대지주의 사설 도서관이다) 수 천 개의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들처럼 저마다 다채롭게 빛난다. 인간의 상상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지, 우리의 인식이 낯익은 것을 경유하지 않고 어디까지 낯설어질 수 있을지, 그래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그들의 어두운 눈구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어.” 132
화자가 영화제작을 위해 단상을 적은 무수한 메모들, 거기 적힌 언어들은 또 다른 평원이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려고,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무한히 뻗어가며 경계를 확장해가는 언어의 속성이야말로 평원과 닮지 않았는가.
“이 곳 사람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할 때, 사라진 후의 부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하나의 장소를, ‘시간’이 장막이나 장벽 같은 개념이 되어 방해받지 않는 그런 장소를 뜻하는 듯하다”p100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도 하나의 평원이 자리 잡았다. 작가의 평원, 그리고 화자의 평원과 같고도 다른 평원일 것이다. 내 안에 광활한 장소가 열린다. “방해 받지 않는” 장소, 그리고 시간에 의해 분절되지 않는 장소. 그것은 미지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자주 그 평원을 들여다 볼 것이다. 문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경이로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