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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천재들의 자본주의 워크숍 -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는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가
울리케 헤르만 지음, 박종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8월
평점 :
책 제목의 경제학, 워크숍, 두 단어에 나는 기가 죽는다. 그럼에도, 수 십 년 동안 세상사에 대한 내 분노의 강력한 알리바이였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단어를, 언제부턴가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사용하는 나를 발견했기에, 그것들의 정의와, 관련 개념들과 파생된 의미들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혐의를 지울 수 없기에, 나는 이 책을 감사히, 성실히 읽기로 결심했다.
숫자와 셈에 약한(정도가 아닌, 무능에 가까운) 나는 약간의 고난을 각오하고, 매일 읽을 페이지수를 겸허한 마음으로 (되도록 얇게) 분배했다. 그리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책장을 넘기자마자 저자 울리케 헤르만은 나를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로 훌쩍 데려간다. 그것도 은근슬쩍 힘 안들이고. 뒷부분이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나는 그날의 할당된 페이지를 훌쩍 넘어 책의 1/3을 훌쩍 넘겨 읽고 있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잣말을 했고,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멍해 보였다”는 증언이 밝히는 애덤 스미스의 성정(나는 이런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이런 인용이 넘친다, 이 책에는), 근대 이전의 경제학은 윤리학에 속했다는 사실(얼마나 바람직한가!), 유산 목록으로 확인되는 18세기 상류층의 생활상(버드나무 의자, 파란색 캐노피가 달린 침대, 나는 이런 디테일이 좋다) 스스로를 ‘철학자’로 여긴 애덤 스미스 (그는 지금까지 얼마나 오해받고 있는가), 18세기 영국 대학에 존재했던 ‘기체 역학’ 수업(기 수업이라고!), 명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당시의 형편없던 강의 수준( 그 수준을 비꼬는 애덤 스미스의 편지를 꼭 읽어봐야 한다), 데이비드 흄과의 우정 어린 교류(그럼에도 여전히 스미스는 혼자 있고 싶어 했다!), 제임스 와트에게 작업장을 만들어준 일화, 자신의 연구에 관한 스미스의 결벽증적 태도 (이 결벽증을 증언하는 문장들은 정말 재미있다), 그의 대표작 ‘도덕감정론’이 안겨준 ‘그랜드 투워’의 기회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등등, 몹시 흥미진진하다.
타인에게 감정이입하는 능력, 즉 공감을 인간의 타고난 본성으로 파악한 애덤 스미스의 사유는 특히 놀랍다.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에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중 일부가 인용되어, 내가 아는 경제학자 그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에 대한 글도 썼나, 하며 의아해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 이전에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대해 매우 깊은 사유를 쌓아갔던 철학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의 출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걸출한 경제학자들의 일대기만을 다룬 책인가? 그렇지 않다. 일대기는 시작이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의 경제학을 다룬다. 작가 울리케 헤르만은 이 천재들의 경제학이 어떻게 당대 현실에서 싹 트고, 만개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살아낸 시대상을, 그리고 그들의 중요한 일대기를 펼쳐 보인다. 작가는 그들의 경제학이 현실과 유리된 연구실의 계산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엄정한 관찰과 분석에서 나온 것임을 증명한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의 시대상과 그의 성장사는 자연스럽게 그의 주요 경제 이론으로 이어진다. 중상주의의 모순, 부의 원천, 경제 활동의 기본 원칙, 거시 경제학, 자유 무역 등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이 설명된다. 저자 울리케 헤르만은 탁월한 작가이다. 논점을 잇고, 펼치고, 여물게 하는 저자의 글솜씨가 빼어나다. 언론인답게 요점을 드러내는 문장은 선명하고 날렵하다. 애덤 스미스의 독특한 성정에 자주 웃게 되지만, 책 전반에 포진된 작가의 톡 쏘는 듯한 날카로운 위트와 유머에 더 웃게 된다. 고난을 각오했건만, 재미있어서, 책을 놓지 못한다. 묵직해지기 쉬운 경제 이론을 이리도 경쾌하게, 날카롭게 풀어 낼 수 있다니, 글을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작가의 스타일과 속도가 탁월하다. 저절로 페이지가 넘어간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으로 들어갈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