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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ㅣ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평점 :
소로는 날씨의 친구다. 그는 365일 날씨의 안색, 소리, 감촉에 주의를 기울인다. 날씨가 뿌리고, 키우고, 거둬들이는 동식물에도 살뜰히 관심을 나눈다. 1855년 1월 26일 일기에는 각별하게도 1월의 날씨들이 날짜별로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루도 같지 않은 빛의 색채, 바람의 방향, 그늘의 음영, 대기의 습도와 향기, 촉감으로 매일 매일 날씨의 안부를 묻는다. 소로는 날씨 그리고 날씨의 아이들과 진심어린 우정을 나눈다.
소로는 뛰어난 화가다. 그의 붓은 펜이다. 펜 끝으로 드로잉하고, 채색한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말 한 쌍, 눈 속에서 몸 전체로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는 스컹크, 맑은 겨울날 희디흰 눈밭에 드리운 파란 그림자, 한 해의 첫 무지개, 해동기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새의 발자국들. 그의 펜은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의 생명을 고요히 안으로 품어 간직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누어 준다.
소로는 사색가다. 물질적인 풍요가 가져가버린 축복과 가져온 재앙에 대해 그는 고민한다. 기쁨이 되어야 할 노동이 과도해지면서 사람들이 자극에 탐닉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는 “삶을 만들고 살찌우는 것은 혼자만의 자잘한 탐험”임을 잊지 않는다. “자기 천성에 따라 주어진 수백 가지 작은 일을 의도적으로 충실히” 할 때 삶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소로는 안다. 소로는 이 세계가 인간만이 아니라 거북알을 위해서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명상한다.
소로는 산문가다. 진솔함은 산문가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는 ‘삶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글쓰기를 우려하고 ‘어떻게 삶을 실제적으로 영웅으로 살았는지’가 중요하다고 쓴다. 그런 이유로 위대한 시인들의 실제 삶을 그는 궁금해 한다. “강연자가 듣는 이의 반응에 맞춰 말을 한다면 그것은 곧 그들에게 알랑거리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당신인 것처럼 말해주길 바란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8) 삶과 글쓰기 사이의 평화는 소로가 가꿔가는 일상의 소임이었다.
소로는 삶의 장인이다. “나는 삶의 열매를 남김없이 따려고 가장 정직한 삶의 기술을 차례차례 실험해 보고 싶었고 또 실제로 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직한 삶의 기술이라 하더라도 절제하지 않는다면, 즉 필요한 양 이상으로 곡식을 거둬들이기 위해 땀을 흘린다면 아주 많은 양의 밀을 추수하더라도 적은 양의 왕겨를 추수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충만한 삶을 위해 멈추기의 지혜를 익히는 것, 이것이 삶의 기술임을 소로는 명심한다.
소로는 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 삶의 묘약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 거대한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자명함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몰과 일출은 일깨운다. 햇살을, 대기를, 물을, 바람을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과 매순간 함께 호흡하고 나눈다. 이 진실을 기억하며 일분일초를 사는 것 이상의 삶의 축복이 있을까. 소로가 발견한 이 명약은 오만과 폭력성, 나약함, 자기연민이라는 인간종의 고질적인 질병에 특효이다.
이번에 출간된 소로의 일기는 ‘영원한 여름’이라는 소제목으로 묶였다. “한 겨울 등허리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발”은 소로에게 겨울 속 영원한 여름을 일깨우는 정령이다. 까마귀의 울음소리, 수탉의 홰치는 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에서도 소로는 여름의 약동하는 생기를 감지한다. 소로는 봄 속의 가을, 여름 속의 겨울, 가을 속의 봄을, 각각의 사계절 속에 모든 사계절이 씨앗처럼 깊이 박혀 있음을 안다. 한 계절 속에 모든 계절이 고갱이로 살아 있듯, 우리의 현재 속에 우리의 모든 시간이 알알이 녹아 있음을 그는 안다. 아름다운 섭리이고, 아름다운 자각이다.
이 간명한 진리 속에 내 삶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단순한 삶이 필요하다고 소로의 일기는 말한다. 이 일기들은 소로가 매일의 삶 속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자연을 바라봤는지 전한다. 자연을 향한 깊은 응시가 그의 사유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또한 이야기한다. 지구 안의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연스러운 삶을 일구기 위해서, 관성이 된 복잡한 사고 패턴과 습관을 간소하게 꾸려야 한다. 소로의 일기는 이 다짐을 마음에 새긴다. 이 책의 페이지마다 그 날의 산책로가 고요히 나를 기다린다. 그 길 위에는 “태고의 착실함”을 간직한 깃털의 새들과 “시큼하고 쌉싸래한” 야생 사과, 그리고 빛으로 가득한 잔잔한 호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찬찬히 눈에 담는 동행인, 소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