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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4호 - 2024.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평점 :
2024년 창작과 비평 여름 204호는 한국 시 특집이다. 오연경 평론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약진 중인 젊은 여성 시인들을 소개한다. 노동 현실, 교차하는 정체성, 변태하고 확장하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 저항과 투쟁의 동력인 유머. 오연경 평론가는 이 네 가지 이슈를 최세라, 주민현, 한여진, 임유영 시인들의 시에서 읽어낸다.
‘헤드셋의 검은 쿠션 사이에 끼어서 존재 할 때’로 시작하는 최세라의 ‘콜센터 유감:뮤트’는 상품과 정보의 교환이라는 공식만이 앙상하게 남은 소비 사회에서 감정 노동이라는 옵션을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여성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자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주민현의 시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여러 정체성이 복합된 이국으로서의 여성 존재를 발견한다. ‘내가 포착한 에리카와 그 포착을 빠져나가는 에리카 사이’라는 구절은 폭력적인 외부 규정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여성의 자유가 느껴진다.
‘나는 솥의 자랑일 것이다’로 호기롭게 마무리되는 한여진의 ‘솥’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대문자 여성 너머, 무수한 여성들의 가능성이 펼쳐 보일 ‘폭과 깊이’를 가늠한다. 임유영의 시 ‘오믈렛’에 대해 오연경 평론가는 ‘몸속 깊은 곳에서 꺼낸 상처에 관한 농담‘이라고 말한다.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과 ‘묶인, 찔린, 찐긴. 손.’은 같은 손이다. 이 두 손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각성은 블랙 유머의 쓴 맛이다.
오연경 평론가는 리부트 이후 젊은 여성 시인들의 시에서 ‘파편화되거나 분절된 언어 또는 환상성의 언어’로 시도되는 독특한 모험들을 감지한다. 나는 이 모험들이 여성의 경험을 배신하고 기만하는 언어들을 폭로하고, 그것들의 저열한 민낯들을 광장에 매달 언어들을 수확해내리라 기대한다. 놀이이자 축제의 언어들, 처음부터 철지난 줄 몰랐던, 제 철이 없었던 언어들을 각성시켜 추방할 여성 시인들만의 만남은 언제나 신난다. 그런 면에서 오연경 평론가의 이번 글은 지면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슈의 발견과 시인들의 소개 면에서 모두 값지다. 젊은 여성 시인들의 시들이 여러 매체에서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메타 비평글인 “되찾은 ‘님’의 시간”에서 송종원 평론가는 최근 한국시 비평이 시의 공공영역(커먼즈)을 적극적으로 독해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는 ‘요즘 비평담론은 작품의 진실에 접근하는 매개로서가 아니라 작품을 새롭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면이 있다’고 최근 비평들을 진단한다. 그에게 소비로서의 시 비평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성을 소거한 해석들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독법의 대척점에 서는 비평으로서 시의 역사성 위에서 ‘시 자체가 거대한 협동작업’임을 이수명과 박노해의 시 겹쳐 읽기를 통해 보여준다.
시인들이 ‘서로의 꿈과 기록으로 현실의 모습과 의미를 한층 선명하고 두텁게 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듯이 ‘비평 역시 민주적 대화의 공간을 열어 협업‘해야 한다고 송종원 평론가는 단언한다. 비평의 협업은 ‘축적된 작품들의 관계 맺음을 통해 시간을 품는 문학사’를 쓰는 동시에 ‘서로가 꾸었던 꿈을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실천적 장’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부여되었던 과도한 특권을 반성하는 것과 인간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일은 당연히 다른데도 종종 혼동된다.’ 송종원 평론가는 시 비평이 ‘기다리는’ 인간의 자리를 상징했던 ‘님’의 자리를 망각하지 말기를 주문한다. 시의 공공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을 ‘설명할 책임’이 여전히 비평가들에게 있음을 그는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