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작은 선물 - 어른들을 위한 동시
최승호 지음, 준한 옮김 / 담앤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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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으면 밤하늘은 깊고 푸르다. 공기는 상쾌하고 검푸른 하늘에 별빛이 노랗다. 파랗게 투명한 어둠, 노란 별빛은 절 마당 청삽살개를 깨운다. 멍 멍 멍, 밤의 환함은 멍 멍 멍, 청삽살개의 불성을 환하게 비춘다. 최승호 시인의 동시집 ‘부처님의 작은 선물’은 한 밤중의 고요를 깨는 ‘청삽살개’의 일갈, 멍 멍 멍으로 시작한다.

청삽살개의 짖음은 진리의 공명으로 밤공기를 쾌청하게 가른다. 상쾌하게 무명을 깨뜨리며 동시집은 이렇게 열린다. 청삽살개의 꿈벅 큰 눈, 과묵한 입은 노랗고, 정리되지 않은 긴 털들은 밤빛이 물든 남색이다. 최승호 시인이 크레파스로 쓱쓱 낳은 청삽살개다. 의뭉하고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부처님에게 연꽃 공양을 바치려 연못에 들린 고라니, 고운 꽃등을 들고 연등행렬에 나선 너구리와 다람쥐, 스님과 함께 마루 위에서 비 구경에 하염없는 개구리, 사바세계를 번쩍번쩍 일깨우는 범종소리, 싱싱한 햇빛에 감사 인사 절하는 금개구리, 부처님 말씀을 우물우물 씹어 먹는 염소, 제비와 제비꽃 소식을 동시에 날아다주는 봄바람, 그리고 자라와 땅강아지, 조랑말과 우산 버섯이 최승호 시인의 동시 안에 그득하다.

시인의 시집 바구니 안에는 개구리들의 노래로 시끌벅적한 봄날의 논과 연못, 늪이, 거위와 오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해질녘이, 스님을 쫓아가는 꿀벌의 야무진 날갯짓이, 나물 캐러 간 스님을 길 잃게 만드는 숲속의 안개가, 돌미륵과 두꺼비를 걱정시키는 빗줄기도, 오소리도 숨게 만드는 소소리 바람이 가득하다.

유정의 존재들과 무정의 존재들이 서로 곁을 내주고 어우러져 하루를 지나고 계절을 지난다. 시인이 채집한 바구니 속의 법계에 부처님의 미소가 달빛으로 비치고, 바람으로 스치고. 빗물로 내린다.

시인이 부처님의 작은 선물이라 부른 삼라만상은 민들레 씨앗처럼 가벼이, 표표히 인연 따라 머물고, 인연따라 떠난다. 무심하고 청정한 세계다. 시인은 깨끗한 언어 속에 그 시절인연의 풍경을 담는다.

동시들은 저마다 최승호 시인이 직접 그린 천진난만한 그림들 위에 편히 앉아 있다. 분별과 논리에 무겁게 발목 잡히지 않은 언어와 그림들은 매임이 없어 홀가분하다.

최승호 시인의 이번 시집 모든 동시들 옆에는 영문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역 감수는 홍대선원 준한 스님이 맡았다. 한글 동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란히 영문 번역문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수풀 수풀, 떠들썩 떠들썩, 미르 미르 푸르미르, 쓱싹쓱싹. 시인의 언어유희가 한글에, 영문에 실려 살아있는 입말이 된다. 일체가 청신한 문자와 그림에 이어서 소리로 장엄되는 순간이다.

다시 깊고 푸른 밤. 청삽살개는 곤한 잠에 들었고 칠성장어와 칠성무당벌레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가끔

내가 북두칠성에서 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다시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고는 하지

칠성무당벌레야

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니

- 칠성장어가 칠성무당벌레에게, 128

동그란 몸을 더욱 동그랗게 모으고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참일지도 모를 칠성무당벌레는 칠성장어에게 어떤 대답을 했을까. 어쩌면 칠성장어는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칠성장어는 이 질문을 세상의 일체만물에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갑니까. 나는 불성에서 나서 불성으로 돌아갑니다. 부처님의 작은 선물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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