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짧은 소설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새의노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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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 새의 노래

매들린 밀러의 신간 ‘갈라테이아’는 피그말리온 신화의 허상을 벌거벗겨 만천하에 드러낸다. 통쾌하게도 이 책에서 작가가 벗기는 대상은 여성이 아니다. 매들린 밀러는 남성 작가가 쓴 신화가 교묘히 감춘 남성 욕망의 베일을 시원하게 벗겨낸다. 순수하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것으로 찬미되고 이해받던 남성의 욕망이 실은 얼마나 비열하고, 파렴치하고, 폭력적인지 매들린 밀러는 이 짧은 단편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자신이 조각한 대리석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한 예술가 남성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알려졌다. 피그말리온의 ‘순수한’ 사랑의 동인은 조각상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이해됐고, 그래서 용인되었다. 그리고 창조자 남성과 피조물 여성의 이야기로 수많은 문학, 연극, 영화로 변주됐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이 남자의 욕망은 여성의 절대적인 ‘미’를 향한 것이었을까. 피그말리온 ‘신화’의 핵심은 여성의 ‘통제 가능성’에 대한 남성들의 욕망과 판타지이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미를 향한 동경으로 조각상을 만들고,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다. 통제와 조정이 가능한, 영원한 피사체, 피조물로 남을, 섹시하지만, 섹스에는 무지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복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여성을 향한 욕망으로 갈라테이아를 만든 것이다.


남성은 통제 욕구 즉, 권력욕을 실현할 대상으로서 갈라테이아가 필요했던 것이다. 권력의 확인, 권력의 재확인, 권력의 재재확인, 권력의 재재재확인. 일상에서 권력감을 충족시킬 도구로서의 여성, 엄밀히 말하면 여성의 몸. 몸은 대리석처럼 차가워서는 안된다. 조물주의 부름에 반응하는 온기있는 고깃덩어리여야 한다. 고깃덩어리가 말을 하면 되겠는가. 사물이 된 살은 말을 해서도, 말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해서도 안된다.


매들린 밀러가 창조한 갈라테이아는 이 이중과제, 섹시하지만 섹스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섹스를 하지만, 임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섹스 할 때는 인간이어야 하지만, 섹스하지 않을 때는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남편의 욕망과 심기는 반드시 읽어야 하지만, 글은 읽어서는 안 된다는, 조물주 남편의 이중신호들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래서 수많은 버전으로 진화해 온 피그말리온 신화들처럼 매들린 밀러의 ‘갈라테이아’도 부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남편과 미모와 인내로 남편을 리드하는 지혜로운 아내의 이야기로 해피엔딩을 맞을까.


매들린 밀러이다. 그의 전작 아킬레우스의 노래, 키르케를 읽고 그녀가 창조한 새로운 신화들을 경험한 나는 숨죽이며 갈라테이아의 말과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언제, 어떻게 피그말리온이 만든 폭력적이고 파렴치한 세계를 깨부술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역시, 매들린 밀러이다.



책의 마지막 장이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자를 끌어안고 바닷물의 저 깊은 바닥을 향해 수직 하강하는 갈라테이아.

살려고 발버둥치는 남자의 몸부림,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와 갈라테이아를 받아들이는 바다의 준엄한 물결.

창조자의 몰락과 피조물의 심판을 푸르게 지켜보는 바다의 무거운 침묵.

갈라테이아의 손가락과 팔, 다리, 목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오는 듯하다.

갈라테이아의 입술과 뺨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순간,

그녀는 어쩌면 이번 생의 마지막일지 모를 그 순간에,

딸, 파포스를 떠올린다. 그 아이의 생명력, 영리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남자를 혹은 남자들을 위해 성노동을 해야 했을

파포스의 동생, 동생, 동생, 태어날 뻔한 무수한 파포스들을, 갈라테이아들을 떠올린다.

갈라테이아는 그녀들,

남자에 의해 성노예로 조각될, 후대의 무수한 파포스들과 갈라테이아들.


그녀들을 구원하기 위해,

후대 여성들에 대한 책임과 연대,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밧줄 삼아, 남자를 포박해,

바다에 뛰어 든 것이다.

그녀가 안고 뛰어든 것은, 그녀가 바다에 수장시킨 것은

남자이자, 가부장제와 남성들의 폭력이다.


남자의 조각과 조각상.

나는 왜 리얼돌들이 생각났을까.

현실의 여자들과 관계 맺기에 실패한,

여성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식하는 것에 무능한,

남성들을 위해 제조, 판매되는 리얼돌.

남성들의 디테일한 욕망까지 반영한 맞춤 제작까지 가능한 (외국의 사례)

리얼돌의 세계는 피그말리온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묘사했듯, 남자와 갈라테이아의 관계는

남자에 의해 연출된 퍼포먼스를 따른다.

갈라테이아는 남자를 받아들일 때, 남자의 각본대로 얼굴을 ‘붉혀야’ 한다.

각본이 수행되지 않을 때, 남자는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의 증건인 ‘멍’을 그는 ‘얼룩’을 보듯 하며, 색이 완벽하다 찬미한다.


짧은 이 책에는 유구한 가부장제와 남성의 다양한 폭력,

현대 인셀들의 행태, 그리고 리얼돌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젖힌 성산업까지.

수많은 상징과 은유들이 넘실거린다.


작가의 말처럼, 독자는 책속에 풍덩 빠져들어 유영하며, 그 상징과 은유들을 만나게 된다.

고딕 소설의 그것처럼, 으스스하고, 처연하고, 아름답다.

끝내, 승리하니, 안심하고 읽으시라.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나면,

갈라테이아가 심해의 바닥에서

너무 오래 잠들어 있지 말기를, 부활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너의 피조물이 너를 심판할 지니, 세상이 알고 기뻐했도다,

너의 피조물이 곧 부활할 것이니, 세상이 알고 더욱 기뻐할 것이다.

책을 덮은 후 나의 마음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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