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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지배자의 연장으로 지배자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오드리 로드의 말이다. 이 한 문장은 거대한 자각이다. 망치와 해머이다. 이 연장은 억압과 착취 위에 세워진 폭력의 세계와 시대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붕괴된 자리에 새로운 세계와 시대를 건설한다. 오드리 로드의 “자미”와 미리엄 테이브스의 “위민 토킹”은 저 문장에 대한 증언이며 헌사이다. 두 소설은 저 문장이 내뿜는 주술이 어떻게 폭력적인 한 세계를 해체하고 평등하고 우애로운 세계를 창조하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각각의 소설들의 자세한 리뷰는 링크한 블로그리뷰를 참고해주세요. )
오드리 로드는 “자미”를 통해 백인, 남성, 이성애, 가부장 중심의 신화를 거부하고 흑인, 여성, 레즈비언으로서 스스로 신화를 써간다. 기득권의 언어로는 자기 삶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를 그녀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녀는 정면 돌파한다. 신화는 한 사회의 가치를 품은 신성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신화가 배제와 차별을 근간으로 한다면, 그 신화가 수호하는 가치와 신성함은 질문 받고 도전 받아 마땅하다.
오드리 로드는 남성 신들의 목소리에 가려 침묵을 강요받았던 여성 신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낸다. 그에게 여성 신들은 신전에 고이 모셔져 있는 박제된 존재들이 아니다. 애증의 어머니, 신화 속의 신화로 늘 되돌아오는 친구, 생명과 사랑을 나눠준 연인들. 살아 숨 쉬는 여성들이 그의 여신들이다. 함께 웃고 울며 분노하고 체념했던, 다시 함께 일어서고 싸우고, 또 넘어졌던 수많은 여성들. 그가 사랑했고 떠났던, 그를 사랑했고 떠났던 무수한 여성들. 만남과 헤어짐 속에 그를 죽이고 다시 살렸던 여성들. 그들이 그에게 남긴 이야기들, 그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이 그의 신화이다. 왜냐하면, 그 여성들이야말로 그를 살리고, 변화시켰으며 삶의 신비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여신들의 이야기로 충만한 그의 신화는 에로틱한 에너지의 거대한 해류로 생명의 바다를 순환한다. 타인과 시공간을 초월해 생각과 경험, 언어와 몸을 섞는 성애의 에너지가 갖는 힘. 그 힘이 추동하는 삶의 조류. 그는 그 힘을 믿었으며, 그 힘을 온 몸으로 살았다. 책 속의 영원한 영혼으로 우리와 공존하는 지금, 그녀가 바라는 신화는 그런 것이다. 순환을 멈추지 않는 조류의 힘처럼 성애의 힘으로 언제나 다시쓰기를 멈추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인 신화. 이 책 ‘자미’가 그 증거이자 우리가 그 목격자이다. 그의 신화는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을 떠나지 않는다. 그의 신화가 자기와 타인을 살리는 영감들로 충만한 이유이다. 현실의 단단한 힘이 되는 이유다.
미리엄 테이브스의 “위민 토킹” 이 소설은 세계를 해석하고 창조하는 연장으로서 언어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언어와 자기 서사의 주권을 갖는 것. 이것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치밀한 이야기로 설득한다. 폐쇄적인 종교 공동체의 성경에 대한 유일한 해석권자는 성직자이다. 신의 언어를 독점적으로 소유한 성직자는 성인 남성, 유소년 남성, 여성, 가축 순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서열화하고 이들을 지배한다. 폭력을 은폐하고, 기만으로 신도들을 길들인다.
경악할 만한 범죄가 일어난 후 피해 여성들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헛간의 볏짚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는다. 최초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주교와 남성의 언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발언하기 시작한다. 성경에 대한 해석권을 누가 갖는가? 자신들은 동물인가? 가축과 얼마나 먼가? 신앙의 근본을 의심한다. 질문하기. 그녀들의 질문이 시작된다. 자신들의 신념 체계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권위는 믿을 만 한 것인가. 강요된 신념 체계가 그들의 삶을 설명해내지 못하자, 그들은 새로운 질문으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자각하기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정교해진 질문들은 신앙과 삶의 본질을 향해 돌질한다.
겹겹으로 둘러싸였던 억압의 문들을 열어젖히며, 질문들이 날카롭게 세공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각한다. 기존의 공동체 신념이 그들과 그들 아이들의 안전, 자유, 생각할 권리, 믿음을 지켜 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떠나기로 결심한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떠난다. 공동체에서 강요하는 믿음과 용서, 사랑이 아닌, 그들이 발명해 낼 믿음과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길 위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녀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에피. 이 회의의 유일한 성인 남성 참석자. 추방자이자 돌아온 자, 그리고 목격자, 기록자로서 초대된 남성. 소설의 초반부 에피는 자살 방법을 찾으러 도서관에 간다. 거기서 그는 우연히 여성사서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공동체 신앙이 덧씌운 죄와 벌의 굴레로 방황하다 죽음을 결심한 그에게 여성사서는 그 자신을 용서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특별한 존재를 긍정하라고 얘기한다.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이름으로 폭력과 학대를 은폐했던 공동체의 남성 가부장들이 그를 죄와 벌로 옭매여 죽음으로 내몰았다면, 인간의 언어로 지어진 도서관이라는 장소에서 인간의 지혜를 돌보는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그에게 죄와 벌로부터의 해방을 얘기해 그를 삶의 방향으로 돌아서게 한다는 이 짧은 에피소드는 얼마나 상징적인가. 아름답고 감동스럽다.
여성 사서와 회의에 참석한 피해 여성들 한명 한명은 이미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여신들이다. 아버지의 연장을 버리고 자신들의 연장으로 미지의 지도 위에 최초의 길을 내는 여신들. 죄와 벌, 용서, 사랑. 기존 아버지의 언어들을 의심하고, 단어들을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하는 여신들. 후대의 아이들을 위해 길에서 죽을 각오로 옛 집을, 옛 언어를, 옛 신을 버리고 스스로 신화가 된 여성들. 신화 쓰기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과 무관하다. 위민 토킹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몸으로, 삶으로 신화를 써간다
“자미”와 “위민 토킹”은 여성의 자기 신화 쓰기에 대한 이야기,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이야기이다. 이 여성들은 여신의 자격을 남성 지배 질서에 묻지 않는다. 그들은 기만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연장을 버리고, 자신들의 연장으로 자신들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어간다. 서로를 살리고, 후대를 살리는 이 여성들의 신화야말로 여러 위기에 처한 지구와 인류를 구할 단서이다. “지배자의 연장으로 지배자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수많은 자미들이 나눈 위민 토킹의 시작이자,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