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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5월
평점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앉거나, 누워만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고 있어도
모멸감, 죄책감, 분노, 슬픔이
뜨겁게 목을 타고 올라오는 시대이다.
브레히트가 울분으로 고발했던
서정시를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역사의 반복.
10여년도 더 됐다.
누군가 조금은 한심하다는 뉘앙스를 실어 ‘시는 읽어서 뭐해?’
시를 읽을 때면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직도 자주 귓전에 들린다.
‘시는 읽어서 뭐해?’
시는 읽어서 뭐하냐니,
베르톨로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나는 이런 이유로 시를 읽는구나.
얼굴도 모르는,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살았던 사람이 주는
뚜렷한 공감의 손짓,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
하여 살며시 다시 일어나는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 힘.
‘봄날의 노인’이 조용히 읊조리는 한탄을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들과 이삭도
지금보다는 푸르렀고 금빛 찬란했다.
돈돈돈,,,
투자투자투자,,,
자본자본자본,,,
계발계발계발,,,
개발개발개발,,,
소비소비소비...
쓰레기쓰레기쓰레기...
이렇게 멀미나는 시대에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브레히트의 시는 용기이자 위안이다.
봄날의 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 젊었을 때는
봄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아가씨들도 그때 더 아름다웠다.
우리 노인들은 그 사실을 유일한 위로로 삼는다.
너희 엄마에게 물어보렴, 나와 같은 생각일 테니
나이를 먹고서야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노인들은 많은 일을 겪어서 하는 말인데
우리 시대는 황금의 시대였지만
너희 시대는 철의 시대다.
들과 이삭도 그때 그랬던 만큼
지금은 푸르지도 금빛 찬란하지도 않다는 말은
사실인 것이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여전히 푸르고 금빛 찬란하다면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
그 찬란했던 태양보다 뜨겁지 않은 건
좋은 현상이 아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가며
햇빛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기에
우리의 삶과 사랑과 시가
그때는 지금과 달랐다
우리 자신만 변하지 않았다
머리가 허옇게 센 사람이 변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